[Erin 칼럼] 자율주행차를 해킹 없이 해킹하는 방법
  • 김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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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5.13 09:24
[Erin 칼럼] 자율주행차를 해킹 없이 해킹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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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회사가 시험 중인 테스트카의 자율주행차 기술은 이미 공도에서 사용 가능한 수준의 완성도 입니다. 자율주행 기술 중 일부는 양산차에 적용되어 지금도 비용만 지불하면 구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일반적인 소비자들이 완전한 (=사람이 전혀 개입하지 않아도 되는) 자율주행 기술을 누릴 수 없는 이유는 자동차가 가진 특수성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이동의 자유를 선사한 자동차는, 그 목적처럼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어디’라는 범위가 자율주행차 제작사들의 상정 한도를 훨씬 뛰어넘는다는 게 문제지요. 제한된 환경에서만 운전하지 않기에 언제 어디서 어떤 조건과 맞닥뜨릴지 대비해야 할 범위가 너무나도 넓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율주행차는 외부 정보를 끊임 없이 흡수하고 학습해야 합니다. 자동차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시시각각 받아들이고 그것을 분석하여 판단에 판단을 이어가야 하지요. ‘자율주행차를 해킹 없이 해킹하는 방법’은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해킹’이라 하면 보통 어딘가에 침투하는 것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보호되어 있는 내부 정보망에 들어가야만, 그 안의 정보를 탈취하거나 수정해 교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이메일에 침투해 정보를 캐내거나, 은행 전산망에 침투해 계좌를 탈취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자율주행차 해킹은 개념이 다릅니다.

자동차 내부의 컴퓨터나 센서망 등 전산시스템에 전혀 침투하지 않고도, 자율주행하는 자동차를 오작동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킹 없는 해킹’이란 다소 의아한 제목을 붙였습니다.

자율주행차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센서를 활용합니다.

첫째는 카메라처럼 외부 정보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패시브 센서이고, 둘째는 라이다처럼 스스로 신호를 발신해 돌아오는 정보를 토대로 상황을 인식하는 액티브 센서 입니다. 둘 모두 외부상황을 탐지하는 매개체로 ‘빛’ 혹은 ‘주파수’를 사용합니다.

카메라는 빛을 받아들여 영상화 함으로써 주행중인 자동차의 주변환경을 파악하고, 라이다는 발신한 주파수와 되돌아온 주파수의 차이를 분석해 주행상황을 탐지합니다.

즉, 자율주행차에 달린 카메라와 라이다를 향해 실제 상황과 다른 빛, 다른 주파수를 쏘면 자동차를 교란시킬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편집된 빛과 주파수를 발신해 자율주행차 전방에 존재하는 장애물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거나, 혹은 없는 장애물을 가짜로 인식시킨 실험이 성공한 바 있습니다. 이럴 경우 장애물에 충돌하거나, 혹은 멀쩡한 도로에서 급정거할 수 있는 것이죠.

공진음파로 자이로센서를 교란해 드론을 추락시키는 드론 사냥총도 매개체는 다르지만 자율주행차 라이다를 교란시키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해킹은 아니었지만, 몇 년 전 발생한 테슬라 모델S의 자율주행 중 사망사고도 카메라정보의 오판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전방의 하얀색 컨테이너 트럭을 하늘로 오인해 멈추지 않고 돌진하는 바람에 사고가 났습니다.

자율주행차의 현재 위치파악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GPS 또한 재밍(전파교란)기술로 교란이 가능합니다. 실제로는 좁은 동네도로를 달리고 있는 자율주행차에 GPS교란전파를 쏘아 제한속도 100km인 고속도로 위에 있는 것처럼 잘못 인식시킬 경우 어떻게 될까요? 제한시속 30km인 동네 도로에서 갑자기 시속 100km로 가속하게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큰 사고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자율주행차는 자체 센서와 GPS 외에, 이동통신망 같은 외부 공용 통신 인프라를 통해서도 데이터를 제공받습니다. 최근 통신사들이 5G와 자율주행기술을 엮어 홍보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백 수천만 대의 자동차가 자체 센서 아닌 공용 통신 인프라를 통해 움직이는 것은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중앙 시스템에 장애가 발생할 경우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동통신망은 비교적 해킹이 어렵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또한 보안이 뚫린 게 이미 수년 전입니다. 기지국 해킹을 통해 LTE망으로 자율주행 중이던 자동차를 멈춰 세우는 실험도 이미 성공한 바 있습니다.

추측컨대 자율주행차의 안전성과 위험성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것입니다. 출시가 된 이후에도 창과 방패의 논리처럼 괜찮다는 측과 위험하다는 측의 논의가 이어질 테지요.

결론은 역시 다채널 정보수집 및 정교한 판단로직에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한두 개의 잘못된 정보가 들어와도 오작동 하지 않고 좀 더 안전하게 자율주행을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서두에도 언급했듯 이미 우리가 상정할 수 있는 환경에서의 자율주행 기술은 완성단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개발자들이 감히 상정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도 자율주행 자동차는 탑승객과 주변 행인들을 최대한 지켜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주변환경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더 많은 센서와 통신인프라로부터 획득해야 하며, 이를 순식간에 처리해 합리적 결과를 도출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기술이 여전히 미숙한 단계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직 완전한 자율주행을 경험해볼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구입할 수 있는 날이 온다 해도 왠지 자율주행 만큼은 얼리어답터로 뛰어들 용기가 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난관을 뛰어넘어 우리 삶에 빨리 자율주행차가 일상화 되기를 바라기도 하지요. 이런 모순된 감정이야말로 커다란 편의와 커다란 위험을 동시에 안고 있는 자율주행의 현 주소를 표현하는 정확한 마음이 아닐까 싶네요.

그렇기에 비록 시간은 조금 더 걸릴지라도, 자율주행기술이 모든 해킹과 오판위험을 뛰어넘는 높은 수준으로 출시되기를 바라고 또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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