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메르세데스-AMG GT S “현대적인 클래식”
  • 김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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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22 11:05
[시승기] 메르세데스-AMG GT S “현대적인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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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 S는 비율로 주변을 압도한다. 앞바퀴를 쭉 내밀며 긴 다리를 자랑한다. 정지선에 맞춰서면, 택시 뒷좌석에 앉은 승객과 눈이 마주친다. 너무 빨리 달려서 그린하우스가 뒤로 밀린 모양새다. 로켓 같기도 하고, 바람에 쓸린 물방울 같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이런 비율로 태어난 자동차는 없다.

메르세데스-벤츠에게는 익숙한 비율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레이스카를 만들고, 영광스런 역사를 만들어낸 브랜드의 전리품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모터스포츠에서 직렬 8기통 엔진이 대세였던 시절이 있었다. 긴 엔진을 앞에 넣다보니, 자연스럽게 운전석은 뒷바퀴와 더 가까워졌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전설적인 레이스카 ‘실버애로우(W25)’도 그랬다. 그리고 레이스카의 실루엣은 자연스럽게 스포츠카로 이어졌다.

300 SL이나 300 SLR가 그랬던 것처럼 GT는 앞이 낮고, 넓적하며, 길다. 페라리를 비롯해 ‘롱노즈’를 쓰는 차는 많지만, GT만큼 극단적이지 않다. 앞범퍼가 시작되는 지점에서부터 앞바퀴의 중심까지의 거리는 900mm나 된다. 앞바퀴의 중심에서 앞문짝이 시작되는 부분의 거리는 965mm에 달한다. 가징 긴 청바지를 입어도 복숭아뼈를 위로 밑단이 올라온다던 모델이 생각나는 기럭지다.

디자이너들은 메르세데스-벤츠의 클래식과 현대적인 감각을 마음껏 버무렸고, 뒷수습은 엔지니어들의 몫이었다. 얉은 보닛에 큰 엔진을 집어넣기 위해 엔진 밑바닥에 붙는 오일팬을 떼어냈다. 보닛의 너비가 워낙 광활하기 때문에 별도의 오일탱크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덕분에 엔진을 차체 가운데 깊숙한 곳으로 밀어넣을 수 있게 됐다. 대신 언제나 엔진 옆에 바짝 붙었던 변속기를 뒷바퀴 사이로 보냈다. 522마력, 68.2kg.m의 힘은 불과 몇개의 기어만을 거쳐 뒷바퀴로 전달된다.

무언가 등을 떠민다. 목이 왈카닥 뒤로 쏠린다. 붉은 계기바늘은 힘차게 시계방향으로 돈다. 오른쪽 바늘은 마치 와이퍼처럼 쉬지않고 몸을 좌우로 흔든다. 자동차에서 팝콘만 튀겨도 사람들이 열광하는데, GT S는 대포를 쏜다. 머플러가 유독 가까워선지 그 소리는 훨씬 더 선명하게 들린다. 검은 점으로 보이던 앞차는 순식간에 코앞으로 가까워졌다.

GT S의 폭발력은 기대 이상이다. 언제나, 앞으로 튀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단거리 선수같다. 1800rpm부터 감당하기 힘든 토크가 뿜어져 나온다. 메르세데스-AMG의 4.0리터 V8 바이터보 엔진은 다양한 출력을 갖는데, 성격은 한결같다. 엔진회전수를 조금만 높여도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회전은 빠르고, 매끄럽다. 실린더 사이에 가지런히 놓은 두개의 터보 차저도 거침이 없다. 터보 차저의 이질감을 줄이기 위해 레이아웃을 새롭게 하고, 엔진 내부의 공기 순환, 냉각 등을 손봤다. 실린더 내부의 무거운 주철 라이너를 제거하고, 나노 슬라이드 코팅 기술을 적용했다. 덕분에 엔진 내부의 마찰계수, 온도 등도 낮아지고, 엔진을 더 작고, 가벼워졌다.

막상 빠른 속도로 계속 달리면, GT S의 독특한 실루엣도 잊게 된다. 거추장거스럽게 느껴졌던 긴 앞머리도 잊게 된다. 그만큼 GT S는 민첩하다. 분명 빠른데, 느낌이 생소하다. 숱하게 스포츠카를 타고 산길을 오르지만, GT S의 움직임은 신기하다. 좁은 코너도 예리하게 파고든다. 코너를 부드럽게 돌아나가는게 아니라, 코너에서 탈출 방향으로 몸을 획 꺾고 빠져나간다. 이게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중독성을 유발한다.

SLS AMG는 충분히 빨랐지만, 코너에서는 밸런스가 무너졌다. 능숙한 드라이버가 아니면 까다롭게 움직였다. GT S는 성능은 높아졌지만, 요구되는 스킬은 대중적으로 변했다. 앞뒤의 무게배분도 탁월하고, 낮게 깔린 무게중심도 효과적이다. 알루미늄과 마그네슘, 고장력 강판을 사용한 뼈대는 격한 주행도 무리없이 버티고, 가볍지만 단단한 더블 위시본은 잠시라도 바퀴가 땅에서 떨어지는 것을 묵과하지 않는다.

스티어링휠로도 GT S의 안정감과 민첩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반응은 즉각적이다. 페달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딜레이란 없다. 전투적인 느낌은 실내에서도 가득하다. SLS AMG에 비하면 양반이지만, GT S는 좁고, 레이스카처럼 폐쇄적이다. 등받이를 뒤로 젖힐 여유도 없다. 기어노브는 이해하기 힘든 위치에 있어서 조작이 불편하다. 일단 D에 놓았으면, 뒤도 돌아보지 말란 얘기같다. 그나마 주행과 관련된 핵심적인 버튼은 조작하기 편한 위치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강력함과 고급스러움의 공존은 메르세데스-AMG의 기본 원칙이나 다름없다. GT S는 클래식한 느낌도 감돌지만, S클래스 수준의 가죽 소재와 마감이 돋보인다. 또 카본파이버와 알루미늄의 비중도 높아서 고성능 스포츠카의 이미지까지 잘 간직하고 있다. 메르세데스-AMG에 늘상 박히던 IWC 시계가 빠진 부분은 조금 아쉽다.

GT의 존재는 메르세데스-AMG에게 무척 각별하다. 단순히 메르세데스-벤츠의 고성능 모델을 만드는 한계영역을 벗어나게 하는, 메르세데스-AMG만의 독자적인 방향성을 제시하는 모델이다. 그리고 GT S는 메르세데스-AMG가 그리는 미래를 기대하게 만든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오랜 역사와, 메르세데스-AMG의 도전 정신이 만드는 시너지는 ‘독일 프리미엄’으로 한데 묶이는 ‘메르세데스’의 격을 한단계 높여주기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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