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김상영] 정의선 수석 부회장의 시대
  • 김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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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14 18:18
[주간김상영] 정의선 수석 부회장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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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가 2006년 피터 슈라이어를 디자인 총괄 부사장으로 임명했을 때만 해도 분위기는 지금과 달랐습니다. 당시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적인 대기업은 ‘순혈주의’가 강했습니다. 한국 기업은 한국인들이 이끈다는 맹목적인 사명이 기업을 지배했죠. 그래서 외국인 임원을 한국 본사에 두는 경우가 흔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선을 한국이 아닌 전세계로 돌리게 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죠.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많은 외국인 임원을 영입하며 체질개선을 시도하는 동안에도, 현대·기아차는 확신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피터 슈라이어를 높은 자리에 앉혀놨지만 순혈주의와 내부 파벌은 여전했죠. 현대·기아차는 매우 수직적이고 보수적인 회사였죠. 그래서 피터 슈라이어 사장은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해냈지만, 현대·기아차의 파격 인사는 오랫동안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4년입니다. BMW M의 개발총괄책임자였던 알버트 비어만을 영입하며,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동안 유명 디자이너를 영입한 경우는 있었지만, 주행성능과 관련해 전문가를 데려오고, 그에게 큰 권력을 쥐어준 것은 이례적이었죠.

이후 현대·기아차는 외국인 임원을 적극적으로 스카웃하게 됩니다. 벤틀리 출신의 디자이너 루크 동커볼케와 이상엽, 람보르기니 출신의 브랜드 전략 전문가 맨프레드 피츠제럴드, 부가티 출신의 디자이너 알렉산더 셀리파노브, BMW 출신의 디자이너 피에르 르클레어, 아키텍처 개발 담당자 파예즈 라만 등 다양한 외국인 능력자들을 영입했죠. 디자인부터 신차 개발, 상용차, 미래기술전략, 마케팅 등 다양한 부서 외국인 임원을 새롭게 임명했습니다.

그당시 현대·기아차에는 두가지 큰 과제가 있었습니다. 고성능 브랜드 N와 제네시스였죠. 그동안 시도하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했습니다. 또 낡아버린 많은 것을 버려야 했죠. 그리고 이를 과감하게 결정할 수 있는 리더가 있어야 했습니다.

정의선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떠오른 것도 이때부터였습니다. 또 알고보면 피터 슈라이어를 데리고 온 것도 당시 기아차 대표이사를 맡고 있었던 정 부회장이였죠. 정 부회장은 2015년 제네시스 브랜드 론칭 때에도 전면에 나섰고, 고성능 N 브랜드에도 많은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인력도 충원했고, 낡은 업무 방식도 전부 새롭게 바꿨습니다.

아직 그 결과에 대해 논하긴 짧은 시간이지만, 정 부회장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현대·기아차가 크게 바뀌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정 부회장이 데려온 인물들은 제역할을 잘 해내고 있습니다. 디자인, 성능, 품질 등은 벌써부터 눈에 띄게 나아지고 있죠. 급하게 제품을 만들기 보다, 몇 발자국 앞을 내다보는 경영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젠 현대·기아차의 변화가 더 빠르고, 조직적으로 이뤄질 것 같습니다. 현대차그룹의 55개 계열사에는 정 부회장을 포함해 총 7명의 부회장이 있습니다. 이들은 정몽구 회장 밑에서 모두 평등한 부회장이었지만, 14일, 현대차그룹은 정 부회장을 수석 부회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이로써 정 수석 부회장은 의사결정에 있어서 훨씬 강력한 힘을 얻게 된거죠.

故 정주영 회장은 현대차그룹을 세웠고, 故 정세영 회장은 한국에서 현대차의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정몽구 회장은 글로벌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했죠. 그리고 이제 정의선 수석 부회장의 차례가 왔습니다. 지금까지의 행보만으로도 가장 진취적이고, 열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정 수석 부회장이 만들어가는 현대차그룹은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궁금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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