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굿바이 머슬…포드 머스탱 GT, LA에서 타보니
  • 김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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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3.22 18:56
[시승기] 굿바이 머슬…포드 머스탱 GT, LA에서 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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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뜬금 없는 시승기가 있을까. 신형 머스탱의 모습이 공개된 지금. 이제와 5.0리터의 초대형 엔진을 장착한 머스탱을 시승하려니 시대를 거꾸로 돌아가는 듯 하다. 하지만 이 차를 시승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머스탱은 1964년 처음 만들어졌다. 2차 대전 참전 전투기에서 가져온 이름으로, 역사상 최대 부흥기를 누린 승전국 미국을 상징하는 아이콘 그 자체라 할 만 하다. 주로 젊은 층들로부터 인기를 끌어 60년대는 한해 60만대 넘게 팔렸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던 모델이었다. 그런데 90년대부터 판매량이 크게 줄더니 최근에는 1년에 6만대 남짓밖에 팔리지 않는 정도로 가라앉고 말았다. 이유는 명확하다. 소비자들이 미국식 스포츠카를 원치 않게 돼서다. 스포츠카를 즐기던 젊은 소비자들은 일본차와 한국차, 돈많은 소비자들은 독일차로 옮겨가고 있다. 

 

포드가 대책으로 내놓은건 날렵한 디자인을 더한 신형 머스탱이다. 최근 쉐보레 콜벳이 스팅레이로 거듭나면서 유럽차나 일본차를 흉내 낸 것과 마찬가지다. 모든게 바뀐 신형 머스탱, 디자인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일명 '무스탕'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 '무스탕'이라면 적어도 복고풍 디자인의 두터운 양피코트 혹은 60년대 전투기가 떠오르고, 거친 남성성을 상징하는 전통적인 아이콘으로 느껴져야만 할 것만 같다. 그런데 신형에는 바로 그 '무스탕'의 이미지가 전혀 담기지 않았다.

새 머스탱은 멋만 없는게 아니고 기본 엔진이 2.4리터 4기통이라고 한다. 따지고 보면 F1마저 V6엔진으로 바뀌어가는 요즘의 자연스런 흐름이다. 어쩌면 5.0리터 V8 엔진이 주는 사운드, 미국 특유의 거대한 배기량의 자동차는 곧 멸종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이 차를 시승해야만 했다. 

◆ 이 정도면 충분히 현대적인 머스탱

"쿨! 너 차좀 볼 줄 아는구나"

한 흑인 할아버지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이번에 시승한 차는 5.0리터 엔진으로 426마력을 내고 토크가 무려 53.9kg-m나 된다. 

 

5세대 머스탱의 외관은 어떤 방향에서 봐도 충분히 멋지다. 6,70년대 머스탱의 역경사 그릴을 따온 레트로 디자인인데, 2004년까지 나왔던 전 세대에 비해 훨씬 더 옛날차 같다. 보고 있으면 어렸을적 잡지나 TV에서라도 봤음직한, 그래서 잠재의식 깊은 곳에서 새겨진 '멋진차'의 표준적 디자인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런 본능적 감각이 깨워지며 감탄이 나온다. 이게 바로 머스탱의 매력이다. 

테일램프도 LED를 적용하고 반짝이는 검정 가니쉬를 적용해 이전에 비해 월등히 현대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전반적으로 클래식하면서도 반대로 미래적인 느낌도 배어나온다. 

머스탱의 계기반

역시 실내는 외부에 비해 큼직큼직하고 빈틈도 많아 한국 정서에는 잘 맞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적인 선굵은 이미지를 경험할 수 있다는 면에서 또 다른 매력이 느껴진다.

하지만 계기반의 디스플레이를 보면 여러 첨단 기능을 갖추고 있는데, 정지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 시간을 알아서 재주는 기능이 있는가 하면, 시속 100km에서 정지까지의 시간도 잴 수 있고 G센서를 통해 전후좌우의 가속상태를 그래픽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차가 아니라 현실감 넘치는 게임기가 된 것 같아 무척  재미있다.

◆ 치밀함보다 호쾌함

LA에서 이 차를 받고 제일 먼저 간곳은 튜나캐년로드다. 우리나라에 북악스카이웨이 길이나 중미산이 있다면 미국 LA에는 말리부 튜나캐년로드라고 할 정도로 미국 젊은이들의 와인딩 성지처럼 돼 있다. 군데군데 이곳에서 삶을 마쳤다는 젊은 청년들 사진까지 세워져 있어 오싹함을 더한다. 

 

개의치 않고 와인딩에 들어서 가속페달을 꾹 밟았는데 아, 이 차는 어디까지나 미국적 취향. 독일계 스포츠카를 기대하면 절대 안된다. 와인딩에서의 짜릿함을 느끼기 힘들고 예리함과도 거리가 멀다. 잘 짜여진 치밀함보다는 FR 차량임을 단번에 느낄 수 있는 약간의 허술함이 오히려 매력이다. 출렁이는 서스펜션 때문에 노면의 느낌도 핸들로 잘 전해지지 않는다. 

차를 신뢰할 수 없는 느낌인데 그게 묘하게 매력이 있다. 가속페달을 밟을수록 끝없이 가속되는 굉장한 엔진을 갖췄는데 반면 핸들은 허투루 돌아가는 느낌이니 와인딩이 짜릿한게 아니라 공포에 가깝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V8 엔진에서는 "두두두두"하는 프로펠러 비행기 같은 소리가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풍부한 엔진 사운드'라는게 이런거였지 다시금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다른 브랜드들은 이 사운드를 재현하기 위해 전기 장치를 더하는 등의 갖은 노력을 하는데, 이 차는 그런게 없다. 그저 5.0이라는 막강한 배기량을 내보일 뿐이다. 세련되지 않지만 이만큼 순수한 사운드를 내는 차는 정말 간만이다.

차는 출렁이면서 운전자의 능력을 보여준다. 브레이크도 차를 지나치게 기울어지게 하고, 가속 페달을 조금만 과감하게 밟아도 뒷바퀴가 미끄러진다. 다만 독일차처럼 일정한 순간까지 버티다 일순간 걷잡을 수 없이 미끄러지는 스타일이 아니라 애초 그립력이라는게 없었다는 듯이 조금씩 미끄러져서 오히려 예측하기 쉬운면이 있다. 이 차는 5리터 대배기량 엔진을 탑재한 최상급 모델이지만 실은 핸들의 샤프함은 V6 3.7리터 엔진 모델에 비해 좀 떨어지는 편이다. 아마도 엔진 크기로 인한 전륜 무게차이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머스탱을 타고 달리는 와인딩이란 이렇듯 믿음이 가지 않는 가운데서 차를 정교하게 주행해야 하는 담력이 요구된다. 이 산비탈에는 굉장한 저택들과 슈퍼카들도 많다. 우리 산동네와 달리 이곳에선 산동네에는 대단한 부자들만 산다고 했다. 마침 백밀러로 BMW X6 M이 보이기에 민폐가 돼선 안되겠다 싶어 용기내 한참을 초고속으로 달렸다. 차를 한적한데 세우고 사진을 찍고 있다보니 예의 그 차가 내려오면서 창밖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운전을 잘한다는건지 머스탱이 멋지다는건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아진다. 

말리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다. 찍고보니 말리부 WRONG WAY...

◆ 머스탱을 떠나보내며

기묘한 느낌이 드는 와인딩을 즐긴 후로부터 머스탱 GT를 닷새 더 탔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한국에서와는 좀 다르다. 괜찮다는 마트와 백화점에 가기 위해 막히지도 않는 길을 줄곧 시속 110km로 두어시간 달려야 했다. 가깝다는 라스베이거스가 5시간을 달려야 한다고 했다. 운전하기 전에 가깝다는 개념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도로 사정은 80년대 한국 도로를 떠올릴 정도로 엉망이었다. 노면은 거칠고 울퉁불퉁하다. 두툼한 타이어와 물렁한 서스펜션은 여기서 진가를 발휘했다. 노면이 거칠지만 운전하는데 피로가 적게 느껴진다. 평소 몰던 독일차였다면 얼마나 힘겨웠을까 생각하게 된다. 

강력한 엔진과 둔감한 서스펜션의 조합은 묘하게 재미있다. 와인딩에서는 도무지 속도를 낼 수 없지만 미국 고속도로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거친 노면을 개의치 않고 좀 더 기분 좋게 밀어붙일 수 있는 느낌이다. 차 사이로 마구 달려야 하는 상황도 많지 않으니 서스펜션이 그리 단단할 필요도 없다. 총든 경찰들도 곳곳에 잠복해있으니 굳이 목숨걸고 시속 200km 넘게 달리는 초고속도 필요없다. 시속 100km까지 줄곧  타이어를 태울 수 있는 강력한 토크와 폭포수 사운드를 즐기면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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