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독일 V8 호텔…진귀한 클래식카 모인 '자동차 마니아들의 성지'
  • 독일 슈투트가르트=김상영 기자
  • 좋아요 0
  • 승인 2014.03.17 18:37
독특한 독일 V8 호텔…진귀한 클래식카 모인 '자동차 마니아들의 성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마살이 끼었는지 일년에 서너번은 유럽 출장을 가야만 한다. 독일차 인기 때문인지 가는 곳도 맨날 독일이다.

물론 글로벌 신차 발표나 시승행사 같은 호사스런 행사도 있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면 일정, 이동수단, 숙박 등은 직접 알아보고 해결한다. 이런 경우 준비 과정도 배낭여행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행색도 영락없는 여행가다. 취재가 바쁘니 길거리에서 대충 군것질로 끼니를 때우고 밤이면 발 뻗을 공간만 있어도 잘 잔다. 그래서 호텔보다는 한국 사람들 많은 민박이나 저렴한 호스텔을 이용하기도 한다. 4성급 호텔이건 뭐건 조명만 좀 다르지 결국 그게 그거라서다.

그러나 이번 출장은 조금 방향을 바꿨다.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줄 수 있는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큰 맘 먹고 테마호텔을 잡았다. 위치도 메르세데스-벤츠 진델핑겐 공장 바로 앞이어서 이번 출장의 거점으로 딱이었다.

사실 이름부터 구미가 확 당겼다. ‘V8 호텔’. 무척이나 심플하면서도 마초적이다. 단번에 어떤 곳인지 느낌이 온다. 가격은 1박에 20만원 정도. 원래 60만원인데 파격세일이 적용된 가격이라고 했다. 어디든 장사하는 방식은 똑같은가보다.

 

이 호텔의 테마룸은 자동차와 관련된 인테리어로 꾸몄다. 자동차 침대는 기본이고 정비소, 세차장, 캠핑카, 모터스포츠 등 다양한 테마로 실내가 꾸며졌다. 특히 벽이나 천장 벽화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꽤 정교하다.

 

대충 온라인에서 'V8 호텔'을 검색 해도 이 정도 정보는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방문해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볼거리가 펼쳐졌다. 실로 '자동차 마니아들의 성지'라 할만 했다. 마치 성지순례를 하는 기분으로 숙박을 했다. 

◆ 호텔 로비에 자동차가 덩그러니

늦은 밤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로비로 들어서니 기괴한 대형 모터사이클과 ‘모건 쓰리휠러(Morgan Threewheeler)’가 눈에 띈다. 모터사이클의 V 트윈 엔진이 차체 앞쪽에 장착됐고 출력은 100마력 정도다. 클래식한 멋을 잘 간직하고 있는 차다. 최고출력은 82마력인데 차체중량이 525kg에 불과하고 지붕이 전혀 없기 때문에 속도감은 상당할 것 같다. 삼륜이기 때문에 느낌도 꽤 이색적일 것 같다. 호텔에서 렌탈도 해주고 판매도 진행하고 있다.

 

로비에서 금발 미녀 직원이 반갑게 인사를 했음에도 시선은 로비 안쪽에 있던 차로 향했다. 사실 독일 여자들은 덩치가 큰 편이어서 좀 무섭다. 안쪽에는 와이즈먼(Wiesmann)의 ‘MF3’가 떡 하니 놓여있다. 역시 쓰리휠러처럼 렌탈과 판매가 목적이다.

 

독일의 코치빌더 와이즈먼은 아쉬움이 남는 회사다. 2년전 본사를 방문해 공장을 살펴보고 시승까지 할 계획이었으나, 때 마침 내린 폭우에 모든 계획이 취소된 적이 있었다. 그런 차를 모터쇼도 아닌 호텔에서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와이즈먼은 BMW의 엔진을 받아 쓰는데 MF3는 직렬 6기통이 장착됐다. 최고출력은 343마력. 차체가 작고 가볍기 때문에 체감 속도는 성능 그 이상일 것이다.

V8 호텔인데 정작 V8 엔진이 탑재된 차는 없었다. 대신 V8 엔진으로 제작한 테이블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이것도 다 판매용이다. 

방은 사진으로 봤던 모습과 다를게 없었다. 벽면을 F1 피트월 사진이 꽉 채웠다. 꽤 생동감 넘친다. 방 자체가 깔끔하고 세련돼 만족스러웠다. 그래도 이왕 큰맘 먹고 비싼 호텔 왔는데 돈 조금 보태서 자동차 침대에서 잘걸 그랬다.

 

◆ 호텔은 그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다음 날 아침. 조식을 먹으려 했으나 시원찮아 보여 그냥 근처 맥도날드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호텔 주변을 둘러봤다. V8 호텔은 ‘모터월드 리전(Motorworld Legion)‘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자동차 매매단지 안에 위치했다. 여기서는 클래식카 전시회가 열리기도 하고 자동차와 관련된 각종 행사가 펼쳐진다. 또 인근 자동차 마니아들이 ‘만남의 광장’으로 이용하고 있는 듯 했다.

 

모터월드 리전에는 페라리, 마세라티, 람보르기니, 벤틀리, 맥라렌, 할리데이비슨 등의 매장이 들어서 있다. 판매부터 A/S까지 이뤄지고 있다. 또 여러 중고차 매장과 클래식카 복원 업체 및 각종 액세서리 업체가 입점했다.

 

특히 중고차 업체들이 각종 클래식카와 슈퍼카 등을 복원해 전시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올드카가 가장 많았고 포르쉐, 재규어, 롤스로이스부터 희귀한 스페인의 자동차 업체 히스파노 수이자(Hispano Suiza)도 전시됐다.

전부 복원된 모델이지만 순정 모델의 부품을 새롭게 제작하고 엔진도 고쳐서 탑재해 오리지널의 느낌을 벗어나지 않게 노력했다. 실내 가죽이나 소프트톱 등만 새롭게 적용했다. 1956년 출시된 메르세데스-벤츠 190SL의 가격이 10만9500유로(약 1억6200만원)였다. 시골에서 한껏 폼 잡을 수 있는 포르쉐 트랙터는 2만4900유로(약 3700만원)였다.

 

람보르기니 쿤타치, 페라리 F40, 재규어 E-타입, 데토마소 판테라, 다양한 세대의 포르쉐 911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스포츠카도 즐비했다.

 

국내선 클래식에 대한 수요가 극히 적고 전문적인 복원 업체도 드물기 때문에 이런 대규모 판매단지를 꿈도 꾸기 힘든 게 현실이다. 독특한 자동차나 향수를 자극할 모델도 없기 때문에 이런 테마 호텔이나 클래식카 매매 단지가 아직 흥행하긴 힘들어 보인다. 또 국내서 자동차 복원을 가장 잘 한다는 곳도 현대차나 기아차가 아닌 ‘삼성화재 교통박물관’ 복원팀이라는 사실이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래도 최근 국내서 ‘갤로퍼 리스토어’가 큰 인기를 얻고 있고 몇몇 자동차 마니아들이 스스로 알파로메오나 메르세데스-벤츠, 포르쉐의 클래식카를 복원하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아직 그 규모가 작고 특정 마니아들의 놀이라는 성격이 강하지만 조금 더 역사가 쌓이고 문화가 정착한다면 언젠가 우리나라에도 이런 멋들어진 호텔이 생겨날 수 있을걸로 기대 해본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