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부품업계, 현대기아차 업고 세계를 뒤흔든다
  • 김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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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2.25 15:40
한국 부품업계, 현대기아차 업고 세계를 뒤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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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바꾸겠다고 알아보던 2004년, 영화 '택시 더 맥시멈'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당시 개인적으로 마음에 두고 있던 '대우 라노스'가 손대기도 께름칙한 쓰레기로 묘사되고 급기야 불태워지는 장면 때문이었다. 이게 미국인들이 보는 한국차의 현실이구나 싶었다.

▲ 2004년 미국 영화 <택시 더 맥시멈>의 한장면. 라노스가 중요한 웃음꺼리로 작용한다. 

이어 뚱뚱한 흑인 여주인공 벨은 불타버린 라노스 대신 최고의 차를 튜닝해 만들기로 한다. 여기서 타이어는 꼭 '쿠모'를 끼워야 한다고 해서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발음이 틀려 그렇지, 그녀가 말한 타이어는 Kumho, 즉 금호타이어였다. 한국산 자동차는 최악의 평을 받고 있었지만, 한국산 부품은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던 셈이다. 

독일 자동차 브랜드 BMW, 아우디, 메르세데스-벤츠가 격돌하는 독일 최대 레이스 대회 DTM에서도 낯익은 브랜드가 계속 눈에 띈다. 우리나라 수입차 오너들은 타이어 취급도 안해주는 한국타이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한국타이어는 지난 2년간 DTM에 레이스용 타이어를 공급한데 이어 앞으로 2016년까지 타이어를 공급하기로 연장 계약을 맺었다. 레이스용 타이어를 공급하는 것은 타이어 업체의 숙원이자 영예다. 타이어가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르지 못한다면 아무리 돈을 싸들고와도 레이싱팀들이 받아줄리 만무해서다.

독일 DTM에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한국타이어

사실 요즘 금호타이어와 한국타이어는 사실 벤츠, BMW, 아우디, 폭스바겐 등 유럽 자동차 회사는 물론, 도요타, 닛산, 혼다 등 일본차 회사에서도 신차 기본 타이어 중 하나로 장착된다. 간혹 독일차들은 국산 브랜드 타이어가 달려 수입되는 경우도 있는데, 우리 소비자들이 워낙 꺼리는 까닭에 되도록 국내 수입 물량에는 외산 타이어를 끼워 수입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모르게 해외 자동차 회사들이 한국 브랜드 타이어를 사용하는 비중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 F1 노리는 금호타이어

우리 국민들 생각과 달리 금호타이어는 이미 지난 2007년 F1 경주용 타이어 시제품을 개발한 레이싱 타이어 기술력의 선두주자다. 한국기업으로는 처음으로 F1 진출을 목표로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첨단 과학의 집약체인 F1 타이어를 제작할 수 있는 회사는 금호타이어, 미쉐린, 피렐리, 브리지스톤, 굿이어 등 세계적으로 단 5개 업체 정도로 알려져 있다. 

레이싱 타이어 제작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다. 시속 300km로 달리는 레이스카의 속도와 압력, 급제동과 급가속, 급커브 등의 극한의 상황을 모두 견딜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중량, 고강도 구조 설계, 첨단 재질 적용, 고속 코너링시 무게중심과 접지력을 유지시켜주는 트레드 설계 등의 기술이 모두 최고 수준이라는 증명이 된다. 

 

금호타이어는 F1 타이어 공급에 앞서 2002년부터 2014년까지 마스터즈 F3의 공식 타이어 후원 업체로 활동하고 있고 모터스포츠의 본고장 유럽에서도 10년 넘게 F3 대회 공식 타이어를 공급하는 등 모터스포츠 분야의 최고봉에 올라서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타이어 제작에서도 독특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타이어 내부에 RFID 태그를 심어 타이어의 생산부터 유통, 판매는 물론 폐기때까지 이 데이터를 갖고 있도록 했다. 수 미터 떨어진 근거리에서도 차에 장착된 타이어가 언제 어떤 경로를 통해 장착 된 타이어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RFID 태그는 작고 얇은 패치형으로 타이어 성형 공정에서 인너라이너(Innerliner, 타이어 가장 안쪽에 부착되는 특수 고무층) 부분에 부착돼 고온, 고압의 제조공정을 통해 타이어와 결합된다. 

▲ 지난해부터 모든 트럭과 버스 타이어에 RFID 칩을 내장한 금호타이어

BMW를 포함한 해외 프리미엄 완성차 업체에서는 점차 LTS(Lot Tracking System: 제품생산 추적 관리 시스템) 정보를 요구하고 있어 향후 승용차용 타이어 시장에서 기술 우위를 선점 할 것이라고 업체는 기대하고 있다. 또 물류비 등에서도 100억원 이상의 비용 절감 효과까지 노릴 수 있다고 한다.

- 신형 벤츠 S클래스에 들어가는 한국타이어

한국타이어는 모터스포츠 레이스에 그치는게 아니라 메르세데스-벤츠 플래그십 모델인 신형 S클래스에 신차용 타이어를 공급하게 됐다. 또 BMW 5시리즈에도 공급하는 등 프리미엄 타이어의 반열에 올라섰다는게 업체의 설명이다. 세계적으로 메르세데스-벤츠 프리미엄급 차량에 타이어를 공급한 업체는 미국 던롭, 독일 콘티넨탈, 프랑스 미쉐린, 이탈리아의 피렐리,  일본의 브리지스톤 등 세계 5개 업체 뿐이었는데, 이번 공급을 통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게 한국타이어 측의 설명이다. 

▲ S클래스에 장착된 한국타이어

이로써 한국타이어는 고급 세단의 최강자인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 독일 명차의 프리미엄 세그먼트와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 베스트 셀링 브랜드를 비롯해 24개 자동차 브랜드들을 두루 섭렵하게 됐다. 

이는 한국타이어의 글로벌 브랜딩 전략이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업체 측은 말한다. 글로벌 브랜딩을 위해 미국, 독일, 일본, 중국 등 주요 거점 지역에 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들은 세계 곳곳의 다양한 주행 환경과 타이어 기술에 대한 요구를 분석해 냈고, 현지 언론과 소비자들로부터 브랜드와 품질에 대한 신뢰를 얻어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유럽 UEFA나 미국 MLB 등 다양한 스포츠에 대한 후원을 통해 세계 소비자들과 공감할 수 있는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이다. 또 글로벌 공급체계를 위해 국내를 비롯 중국, 헝가리, 인도네시아에 7개 생산 시설을 갖췄고 2014년부터는 연간 1억본씩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 부품회사 상전벽해

오토모티브 뉴스와 블룸버그에 따르면 역시 전세계 최대 부품업체는 독일의 로버트보쉬(Robert Bosch)다. 2012년 총 매출액은 524.6억유로(77.8조원)로 웬만한 완성차업체보다 큰 사업규모를 보이고 있다. 

두 번째로 큰 부품업체는 일본 도요타 계열의 덴소지만 지난해 총 매출액은 3.58조엔(40.7조원)으로 보쉬와는 큰 차이가 있다. 이어 독일의 콘티넨탈(Continental), 캐나다의 마그나(Magna), 일본의 아이신(Aisin Seiki)이 뒤따르고 있다. 

한국 부품업체 가운데서는 현대모비스가 8위에 올라 있으며, 다음으로 현대위아가 38위, 만도는 46위에 올랐다. 이외에도 현대파워텍이 70위, 현대다이모스가 90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라비스테온공조 역시 40위권 규모지만, 비스테온(Visteon) 계열로 연결돼 32위에 기록돼 있다. 

물론 보쉬 같은 부품 거인 기업들에 비하면 미약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세계 유수의 기업들 틈에서 모비스가 8위에 올라섰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수십년 된 부품회사와 10여년 된 회사가 이제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게 믿어지지 않는다. 

- '아슬아슬', 극단적 발전 요구받은 부품회사들

현대모비스의 대시보드 시제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세히 보니 내비게이션만 보이는게 아니고 자동차의 온도와 풍량 등을 조절하는 공조장치가 하단에 디스플레이 되고 있었다. 터치패널을 이용한 공조장치다. 웹브라우저를 띄워서 인터넷을 살펴볼 수 있고, 앱스토어에 접속해 앱을 다운로드 받아 설치할 수도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물론 보안상의 이유로 전용 앱스토어로만 접속이 된다. 모비스에 따르면 여기 사용된 OS가 안드로이드여서 개발자가 풍부하고, 다양한 앱 또한 개발 중이라고 한다.

이미 K5, 쏘울, 제네시스 등 현대기아차 신차는 모두 안드로이드를 내장한다. 구글 안드로이드는 아니고 안드로이드 오픈소스 프로젝트(AOSP)라고 해서 OS를 자체 개발한 경우다. 어쨌건 범용 OS인 안드로이드 기반을 차에 적용한건 세계 최초다. 벌써 여기까지 왔나 싶다. 이런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모비스가 기술력을 차근차근 쌓지 못하는 ‘독’이 되었지만, ‘약’도 됐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외국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어찌보면 지나치게 효율적으로 발전 돼 왔다. 해외 자동차 업체들은 부품업체가 하나의 사업분야를 개척해 여러 제조사에 두루 납품하는게 자연스럽게 여겨지지만 우리 부품업체들은 철저하게 한개 완성차 업체에 종속적이다.

완성차 업체와 함께 개발하고 요구하는 것을 만들어주는걸 당연하게 안다. 그러다보니 '갑을' 뿐 아니라 '병정'까지 숱하게 나오고, 제조사가 원하는대로 그때그때 체질개선이 이뤄진다.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고 보면 그야말로 중소기업의 피를 빨아대는 구조라 비난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같은 구조는 요즘 같이 급변하는 자동차 시장에서 완성차 업체의 적응력을 급속도로 높이는 효과를 얻었다. 

예를 들어 다른 완성차 업체들은 해외 공장을 지을 때 관련 부품을 본국으로부터 비싸게 수입해 조립하거나, 관련 부품업체를 어르고 달래며 진출해주길 기다려야 하는데, 현대기아차 그룹은 부품업체들에게 '같이 가자' 한마디면 당연히 따라간다는게 부품 업계 관계자들 얘기다.

심지어 현대기아차는 해외 공장을 지을때 곁에 모비스 공장을 연결해 짓는데, 이 두 공장은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모듈을 공급하기 때문에 운송료도 들지 않는다. 

미국 오하이오 현대모비스 컴플리트 모듈공장. 여기서 대부분 공정이 완료된 상태로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크라이슬러 짚(JEEP) 공장으로 이동된다. 

일본 도요타는 물류비를 줄이기 위해 생산 시간에 정확히 맞춰 부품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차를 만들고 있고, 이게 JIT(Just In Time)라는 이름으로 우수한 혁신 사례로 손꼽히지만, 모비스는 여기 한발 더 나갔다. 직서열방식(JIS-Just In Sequence)이라 이름 붙인 이 시스템은 차량마다 다른 옵션에 맞춰서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모듈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10번째 차에 특별 부품을 장착하는 옵션이 있다면 모비스에서 나오는 모듈도 10번째에 해당 부품과 옵션이 모두 장착돼 벨트를 통해 공장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이 컴플리트 모듈은 제동, 조향, 현가장치나 전장, 에어백, 램프류 등이 모두 장착돼 있어 말하자면 차체에 얹기만 하면 완성 되는 수준으로 공급된다. 이같은 놀라운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은 국내 공장은 물론 현대차 체코, 러시아, 기아차 조지아, 크라이슬러 오하이오 공장 등에도 생산공장에 연결돼 있어 생산성과 비용절감을 극대화 하고 있다. 

- '피 빨리는 부품회사' vs '대박나는 부품회사'

현대차는 이같이 모비스와 여러 부품업체들의 노력에 의해 다른 외국 자동차 회사들이 10년에 한개 지을까 말까 하는 공장을 10여년 사이 미국, 중국, 인도, 터키, 체코, 러시아, 브라질까지 7개국, 기아차도 조지아, 슬로바키아 질리나, 중국 등 3곳에 추가로 지을 수 있었다.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지나치게 미국과 선진 시장에 치중한 사이 현대차는 신흥시장에서 더 많은 수익을 거둬 선진 기업들을 맹렬한 속도로 추월했고 덕분에 세계 5위에 올라설 수 있었다. 

결과를 말하자면 현대기아차와 동반진출한 부품업체들은 ‘피를 빨린’게 아니라 ‘대박’이 났다. 물론 현대기아차가 해외에서 고전 했다면 부품업체들도 힘겨웠겠지만, 부품업체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기울인 이같은 노력은 결국 현대차그룹 전체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고 진출하는 국가마다 연일 홈런을 때리며 모비스와 부품업체들 또한 큰 이익을 거두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