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칼럼] 아파트 도로는 도로가 아니라는 이상한 법
  • 독일 프랑크프루트=이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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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1.23 15:52
[이완 칼럼] 아파트 도로는 도로가 아니라는 이상한 법
  • 독일 프랑크프루트=이완 특파원 (w.lee@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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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1.23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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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자동차가 시속 80km로 주행을 했다고 치죠. 그렇다면 이 차는 과속을 한 것일까요 아닐까요? 뻥 뚫린 고속도로에서는 과속이 아니지만 최고제한속도가 시속 30km인 구간, 예를 들면 어린이보호구역에서는 광기의 속도가 됩니다.

 

과속(過速)의 사전적 의미는 '자동차 따위의 주행 속도를 너무 빠르게 함. 또는 그 속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너무 빠르다'의 의미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보통 최고제한속도를 넘어섰을 때를 이야기하는 것이라 보면 됩니다. 즉 법으로 정한 제한속도를 넘겼을 때를 과속으로 볼 수 있다는 건데요.

그리고 이런 최고제한속도 규정은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 도심 대로 등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어떤 형태의 도로, 법으로 정해진 도로라고 한다면 모두 제한속도가 있고 운전자는 그것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도로교통법에서 도로로 인정받고 있지 않은 곳에서 과속 등, 자동차와 관련한 여러 사고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 아파트단지 도로는 도로가 아니다?

대전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차량에 치여 사망한 6살 어린아이 관련한 기사를 많은 사람이 접하고 분노했습니다. 과속 방지턱이 있는 단지 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던 일가족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오던 자동차에 부딪혀 현장에서 딸아이가 사망한 것입니다.

 

제한속도를 넘긴 과속 차량이 인명사고를 내게 되면 이는 도로교통법상 12대 중과실 중 하나가 돼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아파트단지에서 벌어진 교통사고는 다릅니다. 단지 내 도로는 도로법상 도로로 인정받지 못하죠. 그나마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법에 의해 도로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아파트단지 내 도로는 왜 교통법상 도로가 아닐까요? 사유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경찰은 도로교통법에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다수의 사람이나 차량 통행을 위해 공개된 장소로서, 교통질서 유지 등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 경찰권이 미치는 곳'을 법으로 정한 도로로 봅니다. 반대로 '특정인 및 그들과 관련한 용건이 있는 자들만이 사용되며, 그들(주민들) 스스로 관리되는 장소'는 '도로 외 구역'이라 하고 있죠.

# 현실과 동떨어진 법 고쳐져야

하지만 이런 구분은 비현실적입니다. 우리나라 아파트는 크게는 수천 가구가 모여 사는 대규모 단지로 되어 있는 곳이 많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마을버스가 단지 내를 다닐 정도죠. 당연히 많은 사람과 차들이 뒤섞여 다니는 만큼 사고의 위험도 높습니다. 이면도로보다 사고율이 더 높다는 통계도 있으니까요.

 

그나마 이런 수치도 짐작을 뿐입니다. 법적으로 경찰이 조사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통계에 잡히지 않은 더 많은 사고가 이런 곳에서 발생하고 있을 것입니다. 피해자들도 대부분 노인과 어린이들이죠. 사고 났을 때 피해의 정도가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사유지라는 이유로 국가의 관리 감독에서 벗어나 있어야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법으로 도로로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단지 내에 제대로 된 교통표지판이나 안전 장비 설치가 되어 있지 않은 곳이 많습니다. 따라서 아파트 단지의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아파트단지 내 도로를 어린이보호구역 수준보다 더 강력하게 지정해 보호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새로운 아파트는 건설 전부터 지자체나 지방경찰 등이 나서 단지 내 도로를 어떻게 할 것인지 감독하고 처벌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 독일의 교통완화지역처럼

또 한가지는 최고제한속도의 문제입니다. 2016년 충북의 한 아파트단지 교차로에서 승용차가 자전거를 들이받는 사고가 있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운전자는 30km/h 이하의 속도로 운전을 했지만 머리를 다친 팔순의 자전거 운전자는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죠. 따라서 사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아파트단지 최고제한속도를 10~15km/h 수준으로 낮추는 것도 함께 고려돼야 합니다.

▲ 독일 교통완화지역 / 사진=이완

독일에는 교통완화지역(Verkehrsberuhigter Bereich)이라는 게 있는데요.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주택가 입구에는 반드시 세워져 있는 표지판입니다. 1977년 도입돼 지금까지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죠. 이 지역 내에서는 모든 운전자가 시속 10km를 넘어서는 안 됩니다.

다만 독일의 경우 구간이 비교적 짧기 때문에 규모가 큰 우리나라 아파트단지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얘기되고 있는 15km/h 수준이 적합하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또 아파트단지뿐만 아닙니다. 운전자들이 특히 보행자와 자동차가 구분 없이 다니는 이면도로, 그리고 학교 주변으로 정해져 있는 어린이보호구역 등에서도 운전자들은 법이 정한 제한 속도인 30km/h를 지켜야겠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아파트단지 내 도로가 법적 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과속이나 횡단보도 침범, 중앙선 침범 등이 단속되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운전대 앞에서는 운전자이지만 자동차 밖에서는 나와 내 가족 모두 보행자라는 사실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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