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재규어 F-타입 S AWD “영광의 순간은 언제인가요?”
  • 김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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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5.31 15:40
[시승기] 재규어 F-타입 S AWD “영광의 순간은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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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과 몰락을 반복했던 재규어는 언제나 ‘왕년의 나’를 그리워했다. C-타입과 D-타입으로 르망 24시간 내구레이스를 지배했던 1950년대에서 재규어는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동안 재규어는 입이 닳도록 ‘레이싱 혈통’을 강조했는데, 정작 그에 부합하는 차를 내놓지 못했다.

포드에서 타타그룹으로 주인이 바뀐 후 재규어는 곧바로 브랜드를 이끌 새로운 영웅 만들기에 돌입했다. 독일차만큼 정교하고, 벤틀리와 애스턴마틴과 견줄 정도로 호화롭고, 이탈리아차만큼 빠른 차를 만들던 ‘왕년의 재규어’로 돌아가기 위한 첫걸음이 F-타입이다.

#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디자인

F-타입은 재규어의 역사적인 스포츠카 E-타입의 후계자다. 브랜드 내에서의 위상은 물론이고, 디자인에서도 F-타입은 E-타입의 여러 부분을 계승했다. 이안 칼럼은 유행을 따르기 보단 재규어의 방식으로 스포츠카를 매력적으로 표현하는데 더 집중했다고 한다.

그래서 F-타입은 1960년대의 스포츠카를 연상시키는 요소가 많다. 매끈한 표면과 바디 라인의 흐름은 이 시대의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런데도 무척 세련된 느낌이다. 이안 칼럼은 라인의 위치를 1mm씩 바꿔가며 미세한 차이를 살폈다고 했다.

유려한 라인과 익사이팅한 비율은 F-타입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큼지막한 휠을 달고 오버행과 리어행을 극단적으로 줄였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과장된 스케치가 현실이 된 셈이다.

클래식한 분위기를 잔뜩 품고 있는 F-타입은 1996년부터 2014년까지 생산된 스포츠카 XK의 후속 모델이기도 하다. XK에 비해 비율은 더 드라마틱해졌고, 세부적인 디자인은 더 다듬어졌다. 헤드램프, 라디에이터 그릴, 범퍼 등을 날카롭게 만들어, 한층 더 맹수다운 얼굴이 됐다.

운전석과 보조석은 높은 센터 콘솔로 완벽하게 분리됐다. 모든 버튼은 운전자가 조금 더 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시트를 비롯해 실내에 사용된 가죽의 질감이나 마감은 재규어의 포지션을 잘 말해준다. 크게 멋을 낸 부분은 없지만, 충분히 고급스럽다.

영국적인 색채가 꽤나 짙다. 동그란 스티어링,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기는 계기반 등은 독일차와 확연히 다른 감성을 전달해줬다. 그래선지 클래식한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반대로, 최신 스포츠카란 느낌은 크지 않았다. 우리가 으레 기대하는 화려한 디지털 기술은 찾아볼 수 없었다. 유행을 따르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은 분명 장단점이 명확하다. F-타입을에 특별한 애정을 두고 오래두고 볼 작정이라면, 또 그것을 위해 만들었다면 현재의 실내 디자인은 매우 훌륭하다.

# 오픈 에어링의 묘미

소프트톱을 열면 F-타입의 매력은 극대화된다. 장점은 더 부각되고, 단점은 잊게 된다. 폐쇄적인 실내에 상쾌한 바람과 밝은 빛이 들이치면 세상 부러울게 없다.

일반적인 신차 공개 수순과 다르게 F-타입은 쿠페보다 컨버터블이 더 먼저 세상에 나왔다. 그만큼 개발 초기 과정에서부터 컨버터블에 더 집중된 설계가 이뤄진 것 같다. 소프트톱이 접혀들어가는 부분과 트렁크의 표면은 매끈하게 맞닿았고, 1960년대의 컨버터블처럼 아주 우아하고, 볼륨감 있는 몸매를 지니고 있다.

 

실루엣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큰 장점이지만, 무엇보다 F-타입의 그로울링이 가감없이 들린다. 엔진회전수에 따라 울음소리는 큰 폭으로 달라진다. 천천히 걸음을 옮길 땐 숨을 죽이지만, 사력을 다해 달릴 땐 도로 위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4000rpm을 넘나 들때 F-타입의 포효는 아주 먼 곳까지 울려퍼진다. 단순히 목청이 큰게 전부가 아니다. 운전자를 더욱 자극하고, 긴장감이 흐르도록 만든다. 거친 숨소리를 가진 차는 많지만, 그 큰 소리가 매력적인 경우는 사실 흔치 않다.

다만, F-타입의 울부짖음이 실린 바람이 계속 뒤통수를 때렸다. 리어 윈도우도 없고, 윈드 디플렉터는 옵션으로 대략 10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컨버터블을 타면서 바람 맞는 일은 당연한거지만, 앞머리 혹은 윗머리만 살랑거리도록 설계되는게 요즘의 흔한 컨터버블이다.

# 당신의 영광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F-타입의 조상들은 명확한 공통점이 있다. 모터스포츠 역사에 아주 큰 발자취를 남겼고, 아직도 전설로 칭송받는다. 그래서 F-타입의 어깨는 더 무겁다.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했기 때문일까, 인제 스피디움을 달린 ‘F-타입 S AWD’은 조금 애매한 구석도 많았다.

엔진의 힘은 쌩쌩했지만, 날렵하단 생각은 크게 들지 않았다. 상당히 의외였던 부분이기도 했다. 포르쉐 911 혹은 박스터의 움직임과는 달랐다. 묵직한 느낌이 컸다. 실제로도 F-타입은 꽤 무겁다. 알루미늄을 굉장히 많이 사용하는데, 무거웠다.

슈퍼차저 엔진의 질감은 매끄럽고, 터보 차저 엔진에 비해 훨씬 더 자연스러웠지만 낮은 엔진회전수에서는 폭발력이 크진 않았다. 줄기차게 높은 엔진회전수를 유지해야 비로소 제성능을 발휘했다. 그래서 차의 무게가 더 명확하게 다가온 것 같다. 서킷을 빠른 속도로 달리기 위해서는 엔진회전수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했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꽤 많은 것이 달라졌는데, ZF의 8단 변속기는 엔진회전수 관리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변속 시점이나 변속 속도가 워낙 영민하고 신속했기 때문에 굳이 패들시프트를 쓰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덕분에 한층 더 빠른 속도로 서킷을  공략하는 기분이 들었다. F-타입 S AWD의 사운드는 더 거칠어졌고, 전자식 파워 스티어링은 더 날카롭고, 예민해졌다. 스티어링휠의 무게감이 크게 이질적이지도 않았고, 노면 상황의 전달력도 뛰어났다.

하체에서도 많은 공을 들인 티가 났다. 경량 설계된 알루미늄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은 코너에서 충분한 신뢰감을 줬다. 아주 하드하게 차체를 잡아주는 편은 아니었지만, 아주 유연하게 타이어를 노면에 붙여줬다. ‘레이싱 혈통’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극단적으로 탄탄해도 좋았을 것 같았다. 물론, 이런 세팅 때문에 도심에서의 승차감은 매우 좋았다.

사륜구동 시스템은 앞 혹은 뒷바퀴에 각각 최대 90%까지 구동력을 전달할 수 있다. 자유자재로 구동력을 달리할 수 있지만,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면 뒷바퀴에 더 많은 힘을 보낸다. 후륜구동 스포츠카의 감각을 강조한 사륜구동 시스템이라 젖은 트랙을 빠르게 달릴 땐, 사륜구동 특유의 안전성이 크게 부각되진 않았다. 또 서킷을 여러 바퀴 달리니, 브레이크 시스템은 쉽게 과열됐다. 옵션으로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 시스템을 선택할 수 있지만, 왠만한 소형차 가격이니 선택이 쉽진 않을 것 같다.

F-타입이 주는 이미지와 강렬한 디자인, 1억원이 훌쩍 넘는 가격 등이 시종일관 머릿 속에 맴돌았다. 분명 그것들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박스터와 911처럼 확연한 등급이 나뉘진다면, F-타입을 바라보는 시각도 정리가 될 것 같다. 지금은 애매한 구석이 많다. 2.0리터 터보 엔진이 탑재된 새로운 엔트리 모델까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F-타입의 방향성은 더 모호해질 수 있다. E-타입이 그랬던 것처럼 ‘희소성’을 강조하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방향을 선택했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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