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칼럼] 디젤 포기한 볼보, "주사위는 던져졌다"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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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5.22 10:44
[이완 칼럼] 디젤 포기한 볼보, "주사위는 던져졌다"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w.lee@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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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5.2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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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 볼보 최고경영자 하칸 사무엘손은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과의 인터뷰를 통해 더이상 새로운 디젤 엔진을 개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런 볼보의 결정에 많은 이들이 놀랐는데요, 볼보는 왜 이런 파격적인 결정을 한 것일까요?

 

# 볼보는 계속 준비 중이었다

이번 디젤 포기 선언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작년 사무엘손 회장은 10년 후에는 하이브리드가 디젤 엔진을 대체 가능할 것이라는 얘기를 한 바 있습니다. 디젤차의 배출가스 저감장치 등에 투자하는 비용이 많고, 결국 이 비용이 차 가격에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소비자나 제조사 모두에게 부담될 거라는 얘기도 곁들였습니다.

▲ 하칸 사무엘손 볼보 회장

또, 지난 8일, UN 콤팩트 북유럽 네트워크 회의에서 사무엘손 회장은 자동차 생태계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자율주행, 커넥티드 카, 그리고 전기자동차가 볼보가 집중할 분야임을 밝혔는데, 직접적 표현은 없었지만 그의 발언 속에는 디젤의 미래가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볼보는 꾸준히 디젤이 아닌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그리고 전기차 등으로 회사의 중심축을 옮길 거라는 시그널을 보냈고, 결국 지난 인터뷰를 통해 공식화하기에 이르렀습니다.

# 볼보, 투자 대비 효율 고민했나?

그런데 볼보가 디젤 엔진을 더 개발하지 않기로 한 것은 큰 결단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볼보의 주력은 유럽에서는 왜건, 한국 시장 등에서는 SUV 등이고, 모두 디젤 엔진이 중심에 있습니다. 특히 유럽에서 많이 파는 XC60 등은 디젤 비중이 높은 모델인데 과연 그 자리를 순수전기, 또는 하이브리드로 제대로 채울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장담할 수 없다는게 이들의 주장입니다.

▲ 볼보의 D2, D3 디젤 엔진

그럼에도 이런 결정을 내린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죠. 우선 CEO가 직접 밝힌 것처럼 강화되는 배출가스 규제에 맞서기 위해 엔진 및 배출가스 후처리 장치 등을 개발해야 하는데 비용이 많이 듭니다. 결국 이 부담은 차 가격에 반영이 고스란히 될 테고, 그렇게 되면 디젤차의 경쟁력은 떨어져 노력한 것과 달리 투자 대비 효율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없게 됩니다.

더군다나 하칸 사무엘손 회장은 디젤차의 질소산화물 대응뿐만 아니라 가솔린과 디젤을 모두 포함,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급격하게 줄여야 하는(현 130g/km에서 2021년부터 95g/km) 또 다른 고민거리를 언급하기도 했죠. 현재 볼보의 판매에 따른 이익 규모로는 이산화탄소와 디젤차의 질소산화물 배출 모두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에 투자할 여력이 없어 보입니다.

# 볼보의 부담

디젤 게이트가 2015년 터진 이후 유럽 곳곳에서는 올 9월부터 실행되는 배기가스 실주행 테스트에 맞춰 실제 도로를 달릴 때 디젤차들이 얼마나 배출가스를 내뿜는지를 공개하기 시작했죠. 당시 독일의 아데아체, 그리고 독일 매체 의뢰로 영국 전문 기관 등의 실주행 테스트에서 볼보는 좋지 않은 결과를 보였는데요.

 

아데아체 테스트에서는 볼보 S60 D4가 제한치보다 17배 이상을, 영국 기관 테스트에서는 볼보 XC90이 9개 모델 중 7위를 차지하는 등, 실망스러운 결과가 공개됐습니다. 이런 실배출량을 기준치 이하로 줄이는 게 볼보에겐 큰 부담이었을 겁니다. 소비자가 떠안을 가격 상승의 부담만이 아니라, 기술적으로 EU가 요구하는 배출가스 기준치를 당장 9월부터 맞출 수 있겠느냐는 점도 남모를 고민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 볼보와 다른 선택을 한 제조사들

어쨌든 볼보의 선언은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내연기관이 조금씩 힘을 잃어가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고, 전기차나 수소연료전지차 등에 대한 완성차 업체들의 긴장과 고민이 어느 수준인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볼보는 2019년부터 순수 전기차를 선보일 예정이며, 2024년부터는 기존의 디젤 생산 라인이 멈추게 됩니다.

하지만 볼보와 다른 선택을 한 제조사들도 있습니다. 정확히 2주 전이었죠. 폭스바겐 그룹이 내연기관 연구 개발에 12조 이상을 투자하기로 했으며 디젤차의 배출가스 기준을 EU가 요구하는 수준으로 충분히 맞출 것이라는 내용을 전해드렸습니다. 오히려 디젤에 과감한 투자를 통해 폭스바겐의 디젤 지배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도 확인됐습니다.

기술과 자본이 충분하기에 전기차와 수소연료전지차는 물론 기존의 내연기관을 통해 정면돌파하겠다는 전략이 가능한 게 아닌가 싶네요. 또 메르세데스 벤츠 역시 전기차는 물론 디젤에 대한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는 상황이죠. 실제로 벤츠 디젤 엔진의 개선도 뚜렷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밖에 디젤 엔진 노하우가 깊은 푸조 시트로엥 역시 적극적으로 디젤 배출가스 정책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중입니다. 볼보와 같은 디젤 엔진 포기 전략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곳이 늘어날 수 있는 반면, 독일 제조사와 프랑스 PSA 등은 디젤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계속 시장에서 지배력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 측정기를 달고 RDE 테스트를 진행 중인 모습 

어떤 선택이 최선인지 아직은 단정하기 이릅니다. 하지만 디젤이 자동차 시장의 지형을 바꾸고 있으며, 이런 변화는 강력한 배기가스 규제 정책에 의한 것이라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전기차 시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디젤은 갈수록 위축이 되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판이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다른 제조사들은 어떤 선택을 이어갈까요?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또 어떠할까요? 생존을 위해 디젤을 포기하려는 자와 디젤을 끌어안고 가려는 자, 양쪽 모두에게 쉽지 않은 싸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볼보는 꾸준히 디젤이 아닌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그리고 전기차 등으로 회사의 중심축을 옮길 거라는 시그널을 보냈고, 결국 지난 인터뷰를 통해 공식화하기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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