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쌍용차는 언제까지 렉스턴의 영광에 취해있을 텐가?
  • 전승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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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5.01 09:41
[기자수첩] 쌍용차는 언제까지 렉스턴의 영광에 취해있을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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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귀환'

쌍용차는 지난달 25일 열린 'G4 렉스턴 테크쇼'에서 왕이 돌아왔다고 선언했다. '대한민국 1%'를 내세우며 시대를 풍미했던 '프리미엄 SUV' 렉스턴이 16년 만에 G4 렉스턴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뜻이다.

 

이날 행사에서 쌍용차는 기아차 모하비를 자주 입에 올렸다. 신차 발표회에서 경쟁 모델과의 비교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G4 렉스턴만큼이나 모하비를 언급하며 더 좋은 차라고 강조했다. 

쌍용차가 모하비에 내린 평가는 냉혹했다. 나온지 10년이나 지난 낡은 모델, 시대에 뒤떨어진 디자인 및 첨단 사양, 그리고 최근 다운사이징 추세와 달리 3.0리터급 대배기량 V6 엔진을 계속 달고 있는 '크고 비싼 그저 그런 차'였다. 

반면, G4 렉스턴에 대한 평가는 아주 후했다. 과거의 렉스턴이 그랬던 것처럼 프리미엄 SUV 시장을 선도할 것이라며, 올해 남은 기간 동안 국내에서만 2만대(월 2500대) 판매를 자신했다. 이는 현재 대형 SUV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모하비(월 1300대)보다 2배가량 많은 것으로, 달성하기 무척 어려운 숫자다.

 

행사가 진행될 수록, 쌍용차가 '렉스턴'이란 이름에 얼마나 자부심을 갖고 있는지 여실히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렉스턴은 지난 2001년 출시돼 월 4000대가량의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며 대형 SUV 시장을 비약적으로 성장시켰다. 특히, 렉스턴의 등장 이후 연 13만대 수준이었던 SUV 판매량은 2002년 30만대까지 늘어났다. 1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이 렉스턴만의 공은 아니지만, 당시 국내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전환기적 역할을 했음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겠다.

 

그러나 강산이 2번이나 바뀔 만큼 시간은 흘렀고, 이미 렉스턴은 왕좌를 넘겨준지 오래다. 렉스턴이 외쳤던 '대한민국 1%'는 높은 소득 수준이 아니라 낮은 판매량을 의미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다. 16년 전처럼 잘 나가는 프리미엄의 상징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이제는 G4 렉스턴을 프리미엄 SUV로 구분하기도 민망하다. 비행기 좌석으로 따지자면 비즈니스 클래스 아래의 프리미엄 이코노미와 같은 느낌이다. 모하비와 (단종됐지만)베라크루즈 등 국산 대형 SUV가 나타났으며, 값비싼 수입 SUV의 인기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영광에 취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안된다. 포드 익스플로러 및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등 수입 대형 SUV와 경쟁한다는 장밋빛 미래를 그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G4 렉스턴은 프리미엄을 외치면서도 철저히 저가형 가격 정책을 펼치고 있다. 트림에 따라 3350~4510만원으로, '대형 SUV'라는 차급에 비해 매우 저렴한 수준이다. 절대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모하비보다 340~760만원가령 낮다. 일단,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모하비 소비층을 흡수한 후, 한 등급 아래인 싼타페·쏘렌토 소비층까지 끌어오겠다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래서인지 G4 렉스턴에 굳이 렉스턴의 이름을 붙여가며 억지로 프리미엄 이미지를 가져가려는 쌍용차의 모습은 아쉽기만 하다. G4 렉스턴이 Y400으로 소개될 당시 '렉스턴W보다 한 등급 높은, 완벽히 새로운 차'라고 자신하지 않았던가.

이제 쌍용차는 렉스턴의 영광에서 벗어나야 한다. G4 렉스턴 출시는 '왕의 귀환'이 아니다. 몰락한(?) 왕국을 다시 일으키려는 일종의 '권토중래'일 뿐이다. 냉정한 현실 인식이 동반되지 않은 자신감은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 아래에서 겸손하게, 또 한편으로 과감하게 돌진하는 도전자 정신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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