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시승기] 마세라티 르반떼의 큰 매력...도깨비 '공유'의 차 타보니
  • 김한용 기자
  • 좋아요 0
  • 승인 2017.01.19 09:12
[영상 시승기] 마세라티 르반떼의 큰 매력...도깨비 '공유'의 차 타보니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희가 시승하기로 한건 분명 가솔린 모델이었는데요”

나도 몰래 퉁명스런 말투가 나와 버렸다. 르반떼 가솔린 모델의 출고가 1월로 미뤄지면서 르반떼 디젤을 시승하게 된 게 못내 아쉬웠다.

'마세라티'라면 페라리 가솔린 엔진의 찌릿한 사운드가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디젤을 좀 얕잡아 봤던 면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두 그릇된 선입견이었다는건 금세 깨닫게 됐다. 

올해 3월 제네바를 비롯한 여러 모터쇼에서 수차례 봤지만 도로에서 본 건 그 날이 처음이었다. 모터쇼에서 봤던 첫 인상은 분명 터프한 SUV였는데, 정작 도로에서 보니 마치 이태리제 슈트를 빼입은 듯 늘씬한 마세라티 세단을 떠올리게 했다. SUV 높이에 쿠페 혹은 스포츠카의 느낌. 어찌 했기에 이런 비율이 나올 수 있는 걸까. 아니, 마세라티는 대체 왜 이런 독특한 차를 내놓게 됐을까. 

돌이켜보면 소수의 전유물이던 마세라티가 얼마전부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기블리’ 등장의 영향이 가장 크다. 대형 세단 콰트로포르테, 쿠페 그란투리스모, 컨버터블 그란카브리오로 이어지는 세가지 대형 라인에 중형 신차를 추가하자 놀라운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마세라티를 찾는 구매자들이 줄을 이었고 기존 판매량의 두배 이상 폭발적 성장세를 거뒀다. 

최근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핫’하게 여겨지는 분야는 역시 ‘럭셔리 SUV’. 럭셔리 브랜드들이 이 시장을 놔둘리가 없다. 하지만 이탈리아, 특히 마세라티 브랜드는 SUV와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적잖았다. 결국 마세라티는 SUV면서도 세단 같이 늘씬한 디자인의 르반떼를 내놓게 된 것이다.

# 정말 독특한 디자인, 최고급이기에 가능하다

르반떼의 프론트 그릴은 지나치게 과격하다 생각 될 정도인데, 간격이 너무 넓어 쥔 주먹이 쑥 들어가는 정도다. 하지만 내부의 액티브 셔터가 평소 닫혀있어 정차시엔 안쪽 라디에이터가 보이지 않는다. 

보닛이 매우 길어 멀리서 봐도 르반떼라는걸 알아볼 수 있고, 심지어 고성능 GT카의 비율로도 느껴진다. 수치를 놓고 보면 길이 5003mm × 폭 1968mm × 높이 1679mm로 분명한 풀사이즈 SUV인데 그리 큰 차라 느껴지지 않는다. 천장과 후미로 이어지는 곡선은 매우 아름다운데, 이 선은 차를 아름답게 보이게 할 뿐 아니라 차가 좀 낮아 보이는 효과도 있다. 

운전석에 앉으면 꽤 안락하고 우아한 주행을 즐길만한 넉넉한 공간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뒷좌석에 앉으면 풀사이즈SUV라기엔 좀 적다는 기분이 든다. 거대한 차체 크기는 오로지 강렬한 외관 이미지를 위해 할애 됐다. 크기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차라리 중형 SUV라고 생각하면 속이 편하다. 

실내는 이 급의 자동차가 으레 그렇듯 가죽으로 온통 둘러 있다. 시승차는 1억1천만원짜리 가장 저렴한(?) 디젤모델이어서 가죽이 꽤 두꺼운데, SUV인 이상 보들보들한 송아지 가죽보다 이렇게 내구성 좋은 가죽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대시보드 상단에는 동그란 아날로그 시계가 눈에 띈다. 다른 마세라티 세단은 메탈 에어밴트 등을 곁에 배치해 정장용 메탈밴드 손목 시계의 느낌을 주도록 디자인 된 반면, 이 차는 가죽밴드의 느낌을 주도록 만들어졌다. 실용적이고 터프한 감각을 표현하기 위해서인데, 섬세하고 배려 깊은 스타일링에 감탄하게 된다. 시계 판은 타원이 아니라 동그라미여서 다른 마세라티에 비해 좀 작아보인다.

# 수시로 높아지고, 낮아지고…첨단 장비의 총집합

기어노브를 P에 두었을 뿐인데 차체가 ‘슥’ 하고 낮아진다. 승객이 타고 내리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에어서스펜션의 기능이다. 마세라티를 타는 승객이 높은 SUV에 올라타는 모습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듯한 브랜드의 고집이 느껴진다. 차체 높이는 속도와 노면 상황에 따라서도 수시로 오르내리며 승객의 편의성과 최적의 주행감각 가운데의 적절한 지점으로 맞춰지니 세팅은 그리 고민할 필요가 없다.

최근 들어 마세라티 모델들에 제공되는 디지털 인터페이스 모듈도 그대로 들어왔다. 애플 카플레이나 안드로이드 오토를 지원하는 터치 모니터가 있어 편리한데, 문제는 색상이나 한글 폰트 등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스포츠서스펜션(sports suspension)’을 ’스포츠 현탁액 모드’라고 번역하는 등 번역 오류도 여전하다. 

# 달려보면 어떤 차인가…낯선 주행감각의 매력

차를 달려보면 기분이 묘하다. “쿠르르르르”하는 묘한 진동과 소음을 내면서 차가 발진하는데, 흡사 전차나 군용장비를 모는 것 같은 기분을 자아낸다. 소리가 서서히 고조 돼 3-4000rpm 정도에선 꽤 짜릿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이 또한 진정한 마세라티라고 인정하고픈 마음이 절로 든다. 디젤로 어떻게 이런 느낌을 만들어낸건지 납득이 안될 정도다. 사실 트렁크 안에는 거대한 서브우퍼 시스템이 장착 돼 있는데, 여기서 소리가 끊임 없이 나온다. 스포츠모드에선 더욱 강조된다. 다만 귀로만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몸 전체로 느껴지는 중저음 사운드여서 기분이 좋아진다. 더구나 하만카돈 사운드 시스템이 얼마나 훌륭하고, 음질이 얼마나 뛰어난지 실제 배기음과 섞이면 구분하기 어렵고 거대한 우퍼 또한 마세라티의 새 사운드를 잘 살려내고 있었다. 

스포츠카의 외관이어서 주행감각도 막연히 단단할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실제 주행감각은 꽤 부드러운 타입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SUV 답게 서스펜션의 스트로크가 매우 길어 험로를 달리는데도 승객에게 부담이 적다. 차체는 좌우로 좀 기울어지게(롤) 만들어져 있지만 전후로 기울어지는건(피치) 극단적으로 막고 있다. 롤이 있는 경우도 차체 거동이 바뀌지 않고 매우 안정감 있게 코너를 돌파한다. 

속도를 높이면 안정감이 더 우수해진다. 다른 서스펜션이 된 것 같은 단단함이 살아난다. 가변 댐퍼의 감쇠력이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중저속에선 부드럽게, 고속에선 단단하게 바꿔주는 비율이 딱 적절한 수준의 세팅이다. 

# “나는 오프로더가 아니다”…마세라티의 독자적 행보

최근 SUV의 오프로드 성능을 강화하는 브랜드들이 꽤 있지만, 마세라티는 선을 분명히 그었다. 오프로드에 이 차를 끌고 갈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듯 하다. 다른 브랜드들의 오프로드 주행 모드 같은건 아예 넣지 않았다. 이 차의 4륜구동은 스포츠 주행이나 공도에서 주행 안정성을 위한 것이지 오프로드를 위한건 아니라는고 딱잘라 말하는 듯하다. 사실 1억짜리 차로 굳이 오프로드를 갈 사람은 거의 없을터. 오프로더로 포장하는 다른 브랜드들에 비해 솔직해서 마음에 든다. 

마세라티는 이 차의 도입으로 연간 7만대 판매를 돌파하게 될걸로 기대하고 있다. 포르쉐 카이엔, 레인지로버, 재규어 F-PACE 등 여러 럭셔리 브랜드들이 포진한 치열한 세그먼트에 새 차가 과연 제대로 안착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