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칼럼] 트럼프와 자동차 변속기, 그리고 석유회사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 좋아요 0
  • 승인 2016.12.12 09:33
[이완 칼럼] 트럼프와 자동차 변속기, 그리고 석유회사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w.lee@motorgraph.com)
  • 댓글 0
  • 승인 2016.12.12 09:3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45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며 미국은 물론 국제 사회의 변수로 등장했습니다. 만약 힐러리 클린턴이 됐다면 그녀가 오바마 정부의 정책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예측되는 지점이 있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그렇지 않죠. 특히 '위대한 미국(Great America)'을 외치는 그는 미국 백인사회 중심의 이익과 전통 산업에 대한 애정을 보인다는 점에서 자동차 업계의 시선도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독일의 자동차 부품기업 ZF(ZF Friedrichshafen AG) 회장이 한 말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비교적 간단하게 처리된 기사여서 사람들 관심이 많지 않았지만 저는 그 기사를 통해 자동차 산업이 처해 있는 상황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는데요.

# 자동차 산업에 긍정적 충격줄 것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차 변속기를 만들어 납품하는 ZF의 슈테판 좀머 회장은 "자동차 관점에서 보면 미국은 트럼프 시대에 보수적 시장으로 남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말을 했다고 독일 자동차 포털 모터토크가 전했습니다. 슈테판 좀머 회장이 한 이 말은, 미국 정부가 전통적 자동차산업 부흥을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는 것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 지난 9월 하노버 상용차 박람회장에서 슈테판 좀머 회장 / 사진=ZF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한 트럼프로 인해 미국에 자동차를 수출하는 완성차 업체들은 긴장하고 있지만 슈테판 좀머 회장은 오히려 트럼프 당선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할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왜 그런 걸까요?

ZF는 많은 자동차 관련 부품을 연구하고 만들지만 역시 가장 큰 수익을 내는 것은 변속기입니다. 몇 개 안 되는 회사가 변속기 시장을 지배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ZF는 세계 탑의 회사죠. 그리고 자동차 내연기관이 살아남아야지만 ZF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자동차 시장은 급속하게 전기차 시대를 준비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원해서 틀었다기보다는 기후변화 등에 따른 강력한 환경 보호 정책으로 어쩔 수 없이 변화를 추구한 측면이 상당히 큽니다. 적어도 기존의 자동차 업계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전기차가 활성화되면 많은 자동차 부품업체는 사라질 수 있게 됩니다. 엔진을 연구하고 만드는 곳도 그렇고 연료는 물론, 기본적으로 변속기가 필요 없는 전기차이기 때문에 미션 역시 사라지게 됩니다.

▲ 도널드 트럼프 / 위키피디아, Michael Vadon

오바마 행정부는 기후변화 협약에서 지구온난화의 요인 중 하나인 온실가스 감축에 합의했고, 전기차 등에 대한 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 공약도 이런 흐름을 이어가는 쪽이었습니다. 미국만이 아니라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해야 한다는 당위성 앞에 세계는 지금 가솔린과 디젤 자동차 할 것 없이 억제 정책을 펴거나 펴려 하고 있습니다. 이미 이 변화는 거대한 흐름이 되었기 때문에 속도 조절의 의미만 있지 그 흐름을 거부할 상황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에 전기차는 수소연료전지차 등과 함께 가장 확실한 내연기관 중심의 모빌리티 사회를 대체하는 대안으로 얘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전기차보다는 디트로이트로 상징되는 전통 자동차 제조업을 다시 살리는 것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변속기 회사를 이끄는 CEO 입장에서 트럼프 당선이 조금 더 자신들에게 유리하다 보는 건 자연스러운 관점일 것입니다.

ZF 슈테판 좀머 회장은 당장은 전기차가 위협이 되지는 않겠지만 급격한 변화가 온다면 ZF는 물론 세계 곳곳에 있는 관련 부품업체 직원들 10만 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ZF가 변속기만 만드는 건 아닙니다. 긴급제동 시스템이나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같은 첨단 장비도 판매하고 있고 전기차에 들어가는 전기모터 역시 투자와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변속기로 다진 세계 최고 기업의 자리 대신, 다시 새롭게 전기차 시장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ZF 회장은 기존의 자동차 환경이 최대한 늦게 변하길 원하고 있고, 그 기대에 도널드 트럼프를 적합한 인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 렉스 틸러슨 엑스모빌 회장의 등장

▲ 전기차 암페라-E / 사진=오펠

그렇다면 이런 트럼프에 대한 슈테판 좀머 회장의 판단과 기대는 현실적인 걸까요? 곧 발표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미 국무장관 자리는 현재 렉스 틸러슨이 차지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보도되고 있습니다. 렉스 틸러슨? 그는 뉴욕증시 시가총액 기준 6위에 이름이 올라 있는 석유회사 엑슨모빌(Exxon Mobil)을 이끌고 있습니다. 40년 동안 이 석유회사에 몸담고 있으며 2006년부터 회장 자리에 올라 엑슨모빌을 지휘하고 있죠.

최근 미국 일간지 USA 투데이는 렉스 틸러슨이 한 "에너지가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다."라는 발언을 소개했습니다. 트럼프 당선인은 그런 그를 향해 "기업경영인 이상의 세계적 선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요. 정치 경험이 전무한 세계 최대 석유회사 회장을 대통령 다음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미 국무장관 자리에 앉히려는 것은, 트럼프가 석유와 전통적 자동차 산업 등에 힘을 실어줄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 2012년 크렘린에서 푸틴과 만나는 장면 / 사진=위키피디아, Premier.gov.ru

트럼프는 선거 과정에서 파리기후협정 폐기나 화석연료 규제 완화 및 생산 확대 등을 공약으로 걸었죠. 전기차나 신재생에너지 등으로 향하는 시대의 흐름과는 다소 떨어진 정책을 내걸었다고 봐야 합니다. 그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전통적 제조업 부활을 위해 강력한 정책을 펴나갈 것입니다. 자동차는 물론 석유 기업의 든든한(?) 후원자 되기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전기차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냥 외면하진 않겠지만 '위대한 미국(Great America)'을 외치는 트럼프에겐 그보다는 기존의 산업을 되살리고 성장시키는 게 우선의 목표입니다. 과거 강한 미국 시대를 그리워하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말이죠. 과연 트럼프의 꿈, 그의 정책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자동차와 석유산업, 이는 우리가 트럼프 시대를 읽는 데 필요한 또 다른 통로가 될 것입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