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서른살' 그랜저, 지금 아슬란 사정 봐줄 때인가
  • 신승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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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1.04 09:52
[기자수첩] '서른살' 그랜저, 지금 아슬란 사정 봐줄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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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가 한층 젊어진 신형 그랜저(IG)를 선보였다. 신차는 기존의 중후한 매력보다 역동적인 감각이 돋보인다. 다만, 현대차를 대표하는 고급차로서 다소 가볍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일각에선 현대차가 아슬란과의 판매간섭을 고려해 그랜저의 타겟층을 부득이 한 단계 끌어 내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차는 2일 신형 그랜저의 주요 사양 및 가격을 공개하고, 사전계약 접수를 시작했다. 주력인 2.4모델은 3055만원부터 3425만원까지, 3.0모델은 3550만원부터 3920만원까지 가격대가 예정됐다.

신차는 전반적으로 단단하고 날렵한 고급 세단을 지향했다. 실제로 차를 보면 제네시스 G80과 최근 출시된 3세대 신형 i30가 섞인 느낌이다. 새로운 디자인 아이덴티티와 캐스캐이딩 그릴은 내년 출시될 신형 쏘나타에도 적용될 전망이다.

 
▲ 6세대 신형 그랜저(IG)

다만, 이전 그랜저가 강조했던 품격이나 당당한 카리스마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디자인이 젊어졌다는 것은 현대차가 겨냥한 고객연령층이 낮아졌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현대차는 40대에서 나아가 30대까지를 신형 그랜저의 주 타깃으로 설정했다.

이를 통해 현대차가 노리는 효과는 크게 두 가지다.

▲ 2017 아슬란

우선 아슬란의 소생이다. 기존 그랜저와 아슬란의 경우 디자인 및 제품력에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상위차종의 존재가 유명무실했다. 아슬란은 상품성 개선과 가격 조정 등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판매 부진을 겪으며 끊임없이 단종설에 시달렸다.

두 차종은 디자인부터 차별화를 꾀했다. 신형 그랜저는 젊고 역동적인 느낌을 강조했고, 2017 아슬란은 그릴의 입체감과 일부 라인을 다듬어 한층 고급스럽게 꾸몄다. 중장년층 고객을 중심으로 아슬란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옵션 사운드 시스템으로 그랜저는 JBL을, 아슬란은 제네시스와 같은 렉시콘 브랜드를 적용하는 등 일부 고급 사양도 다르다. 그뿐 아니라 그랜저에 앞서 브랜드 최초로 아슬란에 전륜 8단 자동변속기와 람다II 개선 엔진을 탑재하는 등 플래그십 모델로 대우했다. 아슬란을 찾는 이들은 지금보다 더 늘어날 전망이다.

▲ 7세대 쏘나타(LF)

또 다른 목적은 쏘나타가 빼앗긴 시장의 영향력을 되찾는 것이다. 르노삼성 SM6, 쉐보레 신형 말리부 등의 등장으로 현대차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택시나 렌터카, 법인 영업용 시장에서 쏘나타가 여전히 강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개인 자가용 시장에서는 경쟁자들의 추격이 거세다.

개인 자가용 시장에서 쏘나타와 그랜저의 장벽은 이미 지난 2011년을 기점으로 허물어진 상태다. 그랜저는 제네시스의 등장과 수입차 확대 이후 가장 무난한 선택지로 바뀌었다. 지금의 젊은 그랜저 등장은 최근 쏘나타가 잃어버린 현대차 영향력을 되찾아올 것으로 전망된다.

▲ 1세대 그랜저 광고

문제는 그랜저다. 아슬란을 살리고 자가용 시장에서 쏘나타를 대신할 수 있다. 내수 시장에서 판매량도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그랜저가 지닌 30년 히스토리와 상징성이 무너질 수 있다. 

신형 그랜저가 글로벌 시장에서도 과연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새로운 디자인 아이덴티티와 파워트레인, 그리고 첨단 사양이 대거 적용된 차세대 쏘나타가 출시될 경우 신형 그랜저와 간섭효과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결국 그랜저의 영역은 내수 시장에 국한될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일정 수준의 사회적 지위와 소득을 갖춘 중산층들은 어떤 선택을 내릴까. 제네시스 브랜드는 라인업을 확장하고 있으며, 수입차에 대한 문턱도 낮아지고 있다. 신형 그랜저가 최고급 시장을 버리고 그저 무난한 패밀리세단에 머무른다고 해서 그들이 아슬란을 선택할지는 미지수다.

제네시스 독립 후, 현대차 브랜드가 글로벌 시장에 내세울 수 있는 플래그십 세단은 전무하다. 차라리 하루 빨리 아슬란 카드를 버리고 신형 그랜저를 필두로 현대차 브랜드만의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할 수는 없었을까. 히스토리는 스토리가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귀중한 자산이다. 회사가 지난 30년간 5세대를 거친 '고급차' 그랜저를 너무 가볍게 여기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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