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BMW i8, 오늘날의 스포츠카
  • 김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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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1.01 09:33
[시승기] BMW i8, 오늘날의 스포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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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스포츠카를 만났다. BMW i8은 우리 땅을 밟은 지 일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낯설다. 누구든 그냥 이차를 지나치지 못한다. ‘봤다’라는게 대수도 아닌데, 굳이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는다. 중국인들은 제주도의 빼어난 경치를 앞에 두고 i8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생각해보면 i8은 오늘날의 스포츠카의 전형적인 모습일텐데 모두들 신기한 눈으로 봤다.

 

# “나는 남들과 다르다”

디자인의 힘은 매우 강력하다. 복잡한 설명은 생략해도 된다. 비스듬하게 하늘로 열리는 도어를 보기만 해도 i8이 가진 능력을 대변하는 듯 하다. 막상 어떤 자세로 들어가야 할지 고민되고, 몸을 구겨넣는 자신의 모습이 좀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대도 괜찮다. 멋쟁이는 원래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법이니까.  

 

엉덩이를 살짝 들어올리고 팔을 뻗어야 문을 닫을 수 있었다. 카본파이버 강화플라스틱(CFRP)의 표면이 선명하게 보이는 거대한 날개, 즉 도어는 몹시 가벼워서 큰 힘이 들지 않는다. 철컥. 실내는 역시 상당히 좁다. 뒷좌석은 누군가에게 권하긴 어려운 공간이다. 안전벨트는 그저 가방이 나뒹굴지 않게 묶어두는 용도로 사용하면 적당 할 것 같다.

 

잘 찾으면 친숙한 부품이 몇가지 눈에 띄지만, 여느 BMW와도 확연히 느낌이 다르다. 또 언제나 ‘운전자 중심’을 외치는 BMW지만, 이번엔 더 극단적이다. 센터페시아는 고개를 운전자에게 홱 돌렸다. 동승자가 소외감을 느낄 정도다. 

 

‘미션 임파서블’에서처럼 앞유리를 거대한 터치스크린으로 사용할 순 없지만, 디지털 계기반은 정보 전달이 확실하고 미래지향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엉덩이를 바닥까지 한껏 낮출 수 있는 경량 구조 시트도 독특한 느낌을 준다. 올리브잎 추출물을 이용해 무두질한 가죽은 촉감이 매우 부드럽다. 카본파이버가 사용된 트림도 마감이 훌륭하다. i8도 i3와 마찬가지로 음료수병을 재활용한 초경량 플라스틱이 쓰인다. 실내는 프리미엄, 다이내믹, 친환경 등의 이미지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 엔진과 전기모터의 만남

강력한 스포츠카를 타게 되면 시동을 거는 순간 울부짖는 엔진음을 기대하게 되는데, i8은 아주 차가운 전자음이 시스템의 시작을 알린다. 시동을 건게 아니라 전원을 켠 것 같다. 이렇게 i8은 스스로 '자신은 다르다'고 말한다. 

실제로도 i8은 완전히 새로운 타입의 차다. 여전히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생소한데, i8의 시스템은 조금 더 흥미롭다. 231마력의 1.5리터 3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은 뒷바퀴를 굴리고, 131마력의 전기모터는 앞바퀴를 굴린다. 힘껏 달린 땐 네바퀴에 모두 힘이 들어간다. 구동방식은 시시각각 변한다. 마치 생물같다.

 

전기모터와 엔진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전기모터는 ‘초반 러쉬’에 강하고, 엔진은 ‘슬로 스타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둘의 뒤엉킴이 어색하지 않다. 온힘을 다해 코너를 달려도 이질감이 들지 않는다. 서로 연결고리가 없는데 한몸처럼 힘을 줬다 뺀다. BMW는 완벽한 조화를 위해 전기모터에도 독립 2단 변속기를 장착했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 

 

복잡한 구조를 잠시 잊고 반응에만 집중한다. i8은 충분히 빠르다. 물론 배터리가 넉넉할 때 얘기다. 배터리가 없을 땐, 성능이 현저하게 낮아진다. i8의 성능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충전해야 한다. 이미 많은 이들이 배터리가 없을 때 i8이 얼마나 초라해질 수 있는지 입증했다. 

 

어쨌든 컨디션이 좋은 상태의 i8은 민감하고, 빠르다. 스포츠카답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가짜 소리’는 흥분을 고조시킨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모든 시스템이 적극성을 띤다. 디지털 인스트루먼트 패널이 붉게 물들고, 사운드도 한층 사나워진다.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운전자를 안달나게 만든다. 

# 스포츠카지만, 이건 M이 아니야

i8은 스포츠카가 갖춰야 할 여러 미덕을 갖췄다. 전기모터와 터보 엔진이 만드는 훌륭한 출력과 카본파이버가 아낌없이 사용된 가벼운 차체, 공기저항을 최소화한 유려한 디자인, 배터리 시스템을 차체 중앙에 배치시키면서 얻게 된 무게중심 등 구조적으로 매우 훌륭하다.

 

그런데 그럼에도 허전하다. M에서 느껴지는 사나운 느낌이 없다. 푸른 지구를 만들겠다는 친환경론자의 성격이 모두 부드럽기만 한 것은 아닐터. 그럼에도 ‘친환경은 온화하다’는 고정관념을 i8에서도 느낄 수 있다. i8에는 격렬하고 폭력적인 이미지가 거세됐다.

 

빠르고 아주 깔끔하게 코너를 도는, 일종의 ‘속도가 주는 즐거움’만을 갖고 있을 뿐 원초적인 ‘인간 승리’의 드라마는 없다. M은 엄청난 위력으로 드라이버를 압박하고, 자칫하면 이 산길에서 굴러떨어질 수 있다는 긴장감을 시종일관 전달한다. 생사의 기로에서 느껴지는 두근거림, 살아남았다는 희열, 정복했다는 만족감 등을 i8에서는 느끼기 힘들다. M이라면 야생마를 길들이는 느낌이 들테지만 i8은 이미 길들여진 채로 태어났다. 

 

굽이진 한라산 1100고지를 오를 때도 i8은 별다른 소리를 내지 않는다. i8은 약 40km의 거리를 전기모터로만 달릴 수 있다. eDrive 모드는 시속 120km까지 엔진의 개입을 차단한다. 배터리가 충분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가속페달을 세게 밟아도 엔진이 돌지 않는다. 

 

조용하고, 경량 시트는 신기할 정도로 편안한 포지션을 만든다. 서스펜션도 신경질적이지 않고, 넓은 차체는 낮은 무게 중심 덕에 안정적이다. 승차감이 좋다. 여러모로 GT의 모습이다. 스포츠 모드로 모든 힘을 끌어내도, 여전히 부드럽다. BMW가 지금까지 내놓은 스포츠카 중에서 가장 승차감이 좋은 것 같다. 스티어링도 마치 7시리즈를 몰듯 편안하다. 사이드 미러로 보이는 과격한 디자인의 휀더에 속으면 안된다. 

# 현재 그리고 미래

지금 이 순간에도 가장 흥미롭고, 복잡한 스포츠카 i8은 BMW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도로를 달리고 있다. 그들은 ‘베타 테스터’가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들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번이나 스마트폰을 충전하고, 심지어 전자담배의 배터리까지 충전한다. 자동차에 220V 플러그를 꽂는 것은 일도 아니다. 

 

경차 수준의 유지비와 람보르기니도 울고 갈 디자인, 많은 이들을 만족시킬 성능, 차에 담긴 제조사의 가치관 등 i8은 정말 꿈의 차 같다. i8은 BMW의 100년 역사에서 가장 돋보이는 스포츠카며, 앞으로의 100년을 암시하는 중요한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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