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용 칼럼] 김영란법으로 달라진 현대차 시승 풍경
  • 김한용 기자
  • 좋아요 0
  • 승인 2016.10.10 16:12
[김한용 칼럼] 김영란법으로 달라진 현대차 시승 풍경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작은 벤츠였다.

2011년말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벤츠 여검사’ 사건은 2015년 결국 무죄로 끝을 맺었다. 당시 최모 변호사가 이모 전 검사에게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를 리스해주고 다이아몬드 반지, 샤넬핸드백, 시계, 골프백, 의류 등 5500만원어치의 물품과 신용카드까지 갖다 바치고도 ‘모두 사랑의 정표일 뿐, 대가성이 불분명하다’는게 무죄 판결의 이유였다.

 

그래서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이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소위 김영란법이다. 대가성의 유무와 아무 관계 없이 이해 당사자가 무언가를 주고 받는 자체로도 처벌이 가능하다는 법률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법의 시행을 반기는 입장이다. 초기에 사소한 불편과 어려움이야 있겠지만 결국 어두운 곳에서 일어나는 비리를 막고자 하는게 주 목적이 아닌가. 

더구나 제1조 ‘목적’에 대해 살펴보면 ‘이 법은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청탁 및 공직자 등의 금품 등의 수수(收受)를 금지함으로써 공직자 등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돼 있으니 공직자들의 청렴을 위해서라면 그깟 불편 쯤은 감내할 생각이다. 

평소 언론인들을 광고쟁이 쯤으로 깎아 내리던 사람들도 이번에는 언론인도 공공의 이익을 위한 공익 주체로 판단한다니 한편으론 놀랍고, 한편으론 막중한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워진다. 

또 일부 몰지각한 기자들이 영업 활동에 전념 했던 것도 사실이고, 그 때문에 양심적 기사를 쓰고도 도매금으로 엮여 뭔가 다른걸(?) 기대한 기사 아니냐는 비아냥을 받았는데, 그 해괴한 모습들 또한 이번 기회에 깨끗이 사라지길 기대한다. 

하지만 좋은 법도 본래 취지와 다르게 해석돼 오히려 특정 이익집단에 유리해지거나 생각지 못한 불합리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생긴다. 

 

# 김영란법 초기 시승 풍경...모두가 '허둥지둥'

지난 8일(토) 경기도 고양시 한 음식점에선 현대차의 H옴부즈맨과 동호회 회원 등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한 i30 시승회가 펼쳐졌다. 

마침 주말이어서 지인을 따라 '동반 1인' 자격으로 시승 행사를 다녀왔다. 현대차는 본의 아니게 김영란 법을 위반하게 될까 우려해선지 시승자들에게는 ’나는 김영란법 대상자가 아니다’라는 내용의 확인서까지 미리 받은 모양이다. 

 

한편으론 걱정하면서 행사장에 들어섰는데, 아니나 다를까 현대차 관계자 몇명이 기자를 알아보고는 급히 내부 회의를 했다. 어찌해야 할지 당황하는 눈치였다. 괜찮다고 말은 하면서도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행사가 펼쳐진 식당이 그리 비싼 곳은 아니어서 밥값이 3만원을 넘을 것 같지는 않았는데, 행사장 대여비 등을 식대에 포함시키는 관례를 보면 조심하는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먼저 "혹시 법에 정해진 금액을 넘어설까 우려되니 밖에서 먹고 오겠다"고 했고, 네티즌들이 식사하는 동안 건너편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운전은 직접 하지 못했고 옆자리와 뒷좌석에 앉아 운전하는 동호회원을 인터뷰 하는 식으로 '간접 시승'을 했다. 스스로도 좀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차를 운전하던 동승자들은 앞으로 기자들이 이런 시승만 하게 되냐며 걱정하기도 했다.

현대차로부터 얻어 먹은건 전혀 없는 5시간의 시승이었는데, 현대차 관계자는 “김영란법 때문에 부담스러우니 기사가 아예 안나오면 좋겠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그 입장이 충분히 이해된다. 현대차 뿐 아니라 다른 제조사들도 시승차를 제공하는 것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상황이다. 

하지만 김영란법은 그런 이유로 만들어진 법이 아닌걸로 안다. 기득권자들이 서로 이권을 주고 받는 부적절한 관계를 차단하려는 것일텐데 이것이 왜곡 돼 정당한 취재를 할 기회를 빼앗거나 소비자들의 알권리를 제한하는 용도로 활용 돼서는 곤란하다. 취재 기자가 자동차 시승기를 낼 수 없고, 제조사가 만드는 광고나 마케팅 기사만 나오는건 오히려 법의 근본 취지와 반대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국내 자동차 회사들은 김영란법이나 공정거래법의 저촉을 받지 않는 유사 언론사 사이트를 만들거나 블로그, 포스트, 커뮤니티, SNS 등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적나라한 광고들을 아무 제한 없이 내놓고 있다. 기자를 자처했던 일부 인물들은 스스로 기자직을 내려놓고 ‘프리랜서’나 ‘블로거’로 직업을 전환하기도 했다. 

김앤장을 비롯한 법조계에서는 이번 김영란법 시행을 전후해 여러 업체를 다니며 컨설팅과 강연 특수를 누리고 있다. 이 법의 해석에 '아리송'한 부분이 한둘 아니어서다. 답답한 업체 담당자들은 앞으로 시승차는 어찌 해야 하는지, 행사는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불법 여부를 묻지만 법조계에서도 답을 명확히 내놓지 못한다. “어쨌건 국민 정서에 따르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뿐이다. 

법률이 어려운게 아니다. 양심과 상식을 지키는게 어렵다. 양심껏 행동하면 처벌 받을 일도 없고 상식을 전제로 하면 시승 행사 못하겠다는 볼멘 소리를 할 필요도 없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