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볼보 신형 S90…'긁지 않은 복권'의 화려한 부활
  • 전승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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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9.26 05:45
[시승기] 볼보 신형 S90…'긁지 않은 복권'의 화려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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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보는 자동차계의 '긁지 않은 복권'이었다. 수십년간 집요하게 추구해온 안전은 볼보의 잠재력을 한껏 높여놓은 상태. 이제 남은 것은 촌스러움(?)을 벗고 화려하게 부활할 멋진 디자인뿐이었다. 자동차에 있어서 안전만큼 중요한 가치도 없다지만, 보다 많은 소비자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디자인에도 신경 써야만 하는 법이다.

볼보는 보란 듯이 이를 성공시켰다. 1960~1970년대 만들어진 클래식카를 기반으로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화려한 콘셉트카를 만들어냈고, 콘셉트카의 디자인 요소를 그대로 물려받은 멋진 양산 모델을 선보였다. 이젠 그 누구도 볼보를 '그저 안전하기만한 차'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파격 변화다. 

과연 '긁지 않은 복권'이 어떤 모습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는지, 지난 6월 스페인 말라가에서 열린 볼보 글로벌 시승회에 참가해 볼보의 새로운 플래그십 세단으로 탄생한 신형 S90을 시승했다. 

# 진정한 스칸디나비아 럭셔리의 탄생  

볼보의 디자인은 2012년 폭스바겐 출신의 토마스 잉겐라트가 오면서 대대적으로 바뀌었다. 토마스 잉겐라트는 볼보에 오자마자 클래식카(특히 P1800, P1800 ES) 연구에 집중했고, 볼보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최신 유행에 맞게 세련된 스타일의 콘셉트카 3종을 만들어냈다.

신형 S90은 볼보가 2013년 9월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공개한 '볼보 쿠페 콘셉트'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차의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토르의 망치 주간주행등을 비롯해 새로운 라디에이터그릴과 범퍼, 엠블럼 등 콘셉트카의 디자인 요소가 대부분 그대로 사용됐다. 특히, 튀지 않으면서도 매끄러운 라인을 잘 살려 세련된 느낌을 주는 데다가, 차체 곳곳에 포인트를줘 심심하지 않게 완성도를 높였다.

후면부 디자인은 다소 아쉽다. 트렁크 리드에서 범퍼로 이어지는 라인이 너무 길게 튀어나와 있다. 덕분에 'ㄱ' 모양으로 매끈하게 떨어지는 다른 플래그십 모델에 비해 측후면 실루엣이 왜소해 보이기도 한다. 전면부처럼 '볼드(Bold)'한 느낌으로 볼륨감을 줬으면 더 좋았을 듯하다. 

실내는 앞서 국내에 출시된 신형 XC90 비슷한데, 파격적일 정도로 깔끔하면서도 고급스럽게 꾸몄다. 특히, 센터페시아 가운데에 9인치 모니터를 설치해 대부분의 기능을 터치로 이용하도록 했다. 최대한 각 기능을 직관적으로 배치하고 조작 단계를 최소화해 사용이 어렵지 않았다. 기능이나 조작 정도는 테슬라보다는 다소 떨어지지만, 르노삼성 SM6나 QM6에 들어간 것보다는 훨씬 우수하다.

곳곳에 사용된 소재의 재질은 동급 모델 중 최고 수준이다. 벤틀리 출신의 실내 디자이너인 로빈 페이지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스코틀랜드의 최고급 가죽 제조 브랜드 ‘브리지 오브 위어’의 소가죽을 비롯해 호두나무와 자작나무 등으로 제작된 우드 트림 등을 아낌없이 사용해 고급스러우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주도록 만들었다. 여기에 바워스&윌킨스와 함께 개발한 19개 스피커로 구성된 최고급 오디오 시스템도 들어갔다. 

다만, 1열에 비해 2열은 다소 좁은 느낌이 든다. 무릎 공간은 괜찮은데, 머리 공간이 조금 답답했다. 1열보다 2열의 시트 포지션이 높은 '극장식 배치'가 적용됐기 때문이다. 신형 V90처럼 파노라마 썬루프를 적용해 뒷좌석 탑승객의 시야를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는게 좋았을 듯하다.

# 마법 같은 2.0리터급 모듈형 엔진

파워트레인은 XC90보다 한단계 낮은 수준으로 라인업을 짰다. 아무래도 커다란 덩치의 SUV보다 무게가 300~400kg가량 덜 나가는 세단이다 보니, 무리해서 고출력 엔진을 넣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볼보는 플랫폼뿐 아니라 엔진까지 모듈형으로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2.0리터급 4기통 구조를 기반으로 싱글터보와 트윈터보, 터보차저와 슈퍼차저, 전기모터 등을 적용해 디젤 엔진과 가솔린 엔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등 다양한 엔진 라인업을 만들어낸 것이다. 

국내에는 190마력의 D4와 235마력의 D5 등 트윈터보가 장착된 디젤 모델 2종과 가솔린 싱글터보 모델인 T5 1종이 먼저 나온다. 320마력의 가솔린 트윈차저 모델인 T6와 400마력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인 T8의 출시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다행인 점은 S90의 경쟁 환경이 XC90보다 좋다는 것이다. XC90의 경쟁 모델인 BMW X5나 벤츠 GLE, 아우디 Q7 등은 대부분 3.0리터급 이상의 고배기량 엔진이 장착됐지만, S90의 상대인 BMW 5시리즈나 벤츠 E클래스, 아우디 A6 등은 2.0리터급 다운사이징 엔진이 주력이기 때문이다. XC90 때처럼 배기량 차이로 인한 주행 성능의 한계를 지적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 능숙해진 주행 성능, "급을 높였다"

덕분에 S90의 주행 성능은 동급 경쟁 모델에 비해 부족함이 없다. 시승한 D5 모델의 경우 예상보다 훨씬 더 매끈하게 잘 달렸다. 출발 시 저속에서의 발진감을 비롯해 중고속에서의 속도를 끌어올리는 능력과 재가속 능력, 고속 이후에서도 속도를 내는 꾸준함 등은 도저히 2.0리터급 엔진이라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는 볼보의 디젤 엔진에 탑재된 2개의 치트키 덕분이다. 우선, 터보랙을 줄이는 파워펄스 시스템을 통해 터보차저의 역할을 극대화시켰다. 공기 필터에 미리 2리터가량의 공기를 압축해놨다가 저속에서 급가속할 때 즉각적으로 터보차저를 돌리는 방식이다. 또, 지능형 연료분사 기술인 'i-ART'가 적용돼 연료 분사량을 최적으로 맞춰준다. 각 인젝터마다 달려있는 인텔리전트칩이 연료 분사 압력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이를 조절하는 것이다.

함께 적용된 8단 자동변속기도 부드럽고 꾸준하게 엔진의 성능을 끌어냈다. 듀얼클러치처럼 빠르거나 과격하지는 않지만, 능숙하게 엔진의 한계치를 야금야금 뽑아내는 모습이다. 다소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플래그십을 담당하는 S90에는 이런 세팅이 더 잘 어울리는 듯하다. 

스티어링휠의 움직임과 차체 반응도 만족스럽다. 처음에는 조금 가벼운 세팅이 아닌가 싶었는데, 속도에 따라 제법 쫀쫀해 잡아줘 기분 좋은 손맛이 느껴졌다. 급한 코너에서도 날렵한 핸들링을 보여줬는데, 별다른 이질감 없이 뒤가 잘 따라왔다. 강성이 워낙 좋은 데다가, 후륜 서스펜션까지 인테그럴링크로 '급'을 높인게 확실한 효과를 본 듯했다. 고속에서도 속도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차체 안정성이 뛰어났고, 노면 소음 및 풍절음도 잘 잡아줘 불안하지 않았다. 

조금 아쉬운 점은 XC90에 적용된 에어서스펜션이 S90에는 제외됐다는 것이다. 차의 성격이나 가격 등의 이유 때문으로 보이는데, 만약 적용됐다면 경쟁 모델과 확실히 차별성을 줄 수 있는 요소였을 듯하다. XC90의 경우 에코, 컴포트, 다이내믹, 오프로드, 인디비쥬얼 등 5개 주행 모드에 따라 서스펜션 높이를 최대 90mm 조절한다. 에코·컴포트·다이내믹 모드에서는 낮춰 공기 저항을 줄이고, 오프로드 모드에서는 높여 주행 안정성을 향상시키는 방식이다. 

# 변하지 않는 '안전의 볼보'

안전한 볼보는 더 안전해졌다. 신형 S90은 볼보가 새롭게 개발한 모듈형 플랫폼인 SPA를 사용해 만들어졌는데, 이전 모델에 비해 인장강도 80kg/㎟ 이상의 초고장력 강판(UHSS)이 5배 넘게 사용됐다. A필러와 B필러, C필러를 비롯해 탑승 공간을 감싸는 형태로, 후방 충돌을 대비해 트렁크 밑바닥 등에도 초고장력 강판이 들어갔다. 

특히, 볼보가 자랑하는 최첨단 기술들이 모두 기본으로 적용됐다. 파일럿 어시스트 II를 비롯해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인텔리세이프 시스템 등이 전 트림에 들어갔다. 이는 안전을 위한 볼보의 철학과 고집이 느껴지는 부분으로, 여러가지 가격 인상 요인에도 불구하고 다른 브랜드처럼 고급 트림에 옵션으로 넣은게 아니라 모든 차에 모조리 집어넣은 것이다.

볼보의 반자율주행기술인 파일럿 어시스트는 2세대로 진화하며 완성도가 더 높아졌다. 스페인 시내에서 파일럿 어시스트Ⅱ를 작동시키고 주행을 해봤는데, 스티어링휠 및 페달 조작 없이도 앞차와의 간격을 적절히 유지하며 주행을 이어나갔다. 특히, 완전 멈춤 및 출발이 가능하고, 웬만큼 급한 코너가 아니라면 차선을 벗어나는 일도 없을 정도로 안정감이 느껴졌다. 

# 공격적인 가격 정책

분명, 예전 볼보는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와 BMW 5시리즈 등의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와 직접 경쟁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단순히 디자인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인 상품성에서 다소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볼보는 최근의 대대적인 변화를 통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그리고 후발 주자로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이들보다 수백만원 저렴한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펼쳤다.

신형 S90의 가격은 5990~7490만원이다. 절대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같은 배기량의 E클래스(6650~7900만원) 및 5시리즈(6330~7750만원)보다 300~700만원가량 낮다. 세부적으로는 D4 모델이 5990~6690만원, D5 모델은 6790~7490만원, T5 모델은 6490~7190만원이다. 전체적인 상품성을 고려했을 때 꽤 경쟁력 있는 가격대로 보인다.

# 온고지신(温故知新)의 좋은 예

안전은 볼보에게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볼보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인 동시에 브랜드 이미지를 한정 짓는 족쇄기도 했기 때문이다. 특히, 볼보를 '그저 안전하기만한 차'로 평가절하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변화가 절실했다.

신형 XC90에서 S90, V90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볼보들은 과거의 투박했던 모습을 벗어던지고 멋지게 변했다. 지금까지의 볼보는 '안전' 때문에 사는 차였다면, 지금부터의 볼보는 '스타일' 때문에라도 살 수 있는 차가 된 것이다. 드디어 안전에 가려져 있던 볼보의 진가를 편견 없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파격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볼보가 추구해온 '사람 중심의 철학'은 바뀌지 않았다. 외관 디자인과 실내 사양을 비롯해 차체와 파워트레인, 안전 기술 등 볼보 자동차의 모든 것에는 늘 사람이 중심에 서있다. 특히, 단순히 좋은 차를 만드는데서 끝나는게 아니라, 다음 세대들을 위해 자연을 보호하려는 스웨덴 특유의 신념까지 녹여내는 모습은 다른 브랜드에서도 본받아야 마땅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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