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혼다 HR-V…기발함이 만들어 낸 '한뼘'
  • 김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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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8.18 11:57
[시승기] 혼다 HR-V…기발함이 만들어 낸 '한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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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의 인식 변화는 종잡기 힘들다. 해치백과 차별성이 모호해 오랜 시간 천덕꾸러기 신세던 ‘작은 SUV’가 이젠 거대한 트렌드가 됐다. 유행은 참 무섭다. 어디서 오는지, 어디로 가는지 예측하기가 힘들다. 작은 SUV의 인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진 모르겠지만, 거의 모든 브랜드가 발벗고 나서서 신차를 내놓고 있는 상황을 보면 한동안 유행은 지속될 것 같다. 

 

작은 SUV 홍수 속에서 이를 오랜 시간 묵묵하게 연구했던 브랜드와 유행에 편승하기 위해 급조한 브랜드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혼다 HR-V는 아주 철저하게 준비된 소형 SUV다. 특히 대다수의 소형 SUV가 지적받는 실내 공간의 협소함을 특유의 재치로 해소했다. 단순히 뒷좌석 시트가 남다르게 접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독특한 시트 구조와 넓은 실내 공간을 만들기 위해 연료 계통의 설계를 완전히 새롭게 했다. 사소한 것 같지만 이런 아이디어 하나가 큰 차별성을 갖게 하고, 전체적인 신뢰감을 높인다. 

 

일반적으로 뒷좌석 아래 위치한 연료 탱크를 앞좌석 아래로 이동시켰다. 혼다는 이를 ‘센터 탱크 레이아웃’이라고 부르며 특허까지 등록해놨다. 혼다는 극도로 작은 일본 경차 기준을 충족시키면서, 넓은 실내 공간을 창출하기 위해서 이 방식을 고안했다. 실제로 미쓰비시는 혼다에게 이 특허를 빌려서 경차를 제작하기도 했다. 

▲ HR-V의 기반인 혼다의 소형차 피트. 피트 역시 연료탱크가 운전석 밑에 위치했다.

그래서 HR-V의 시승은 뒷좌석에서부터 시작됐다. 그토록 강조했던 ‘매직시트’가 큰 매력이 없다면, 결국 HR-V는 수많은 소형 SUV 중 하나일 뿐이었다. 푸조 2008, 르노삼성차 QM3, 쌍용차 티볼리 등 숱한 경쟁 모델 중에서도 HR-V의 뒷좌석 공간은 훨씬 넓었다. 휠베이스도 가장 길지만, 그 이상의 공간을 갖고 있었다. 

 

밑바닥에 연료탱크가 없으니, 시트를 굉장히 낮게 배치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머리 공간의 여유가 커졌다. 또 다리 공간과 트렁크 공간 모두를 만족시킬 위치로 시트를 고정했기 때문에 더 남다른 실내 공간이 생겨났다. 알고보면 CR-V와 휠베이스는 고작 10mm 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니, 이 넓은 공간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매직시트의 특징은 공간을 만들어내는 방식에 있다. 단지 넓은 게 전부가 아니라, 넓은 공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설계됐다. 일반적인 시트와 달리 뒷좌석의 엉덩이 받침이 위로 접힌다. 이를 통해 최대 126cm의 높이를 확보할 수 있다. 화분이나 유모차 등 키큰 짐도 똑바로 세운 채 실을 수 있다는게 큰 장점이다. 

 

뒷좌석의 유용함은 고만고만한 소형 SUV 세그먼트에서 큰 무기가 될 것 같다. 주행 성능이나 실내 품질, 편의 및 안전 장비만 어느 정도 받쳐준다면 HR-V가 유행을 이끌 수 있을 것 같았다.

완벽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투자 비용의 한계와 세그먼트의 특성을 생각하면 어느 한 소형차가 경쟁 모델에 비해 월등한 우월함을 보여주긴 어렵다. HR-V도 완벽하진 않았다.

 

HR-V의 파워트레인은 다소 고루한 느낌이 있다. HR-V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모델인만큼 다양한 파워트레인이 장착되지만, 우리나라에 출시된 모델은 북미형으로 혼다가 오랫동안 사용한 1.8리터 4기통 i-VTEC 엔진이 탑재됐다. 미국 시장을 무대로 성장한 엔진인 만큼 터보 차저를 활용한 다운사이징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1.4리터 4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을 사용하고 쉐보레 트랙스와 비교하면 제원상 나은 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또 1.6리터 4기통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을 사용하는 티볼리와 비교해도 크게 앞선다는 느낌은 없다. HR-V의 무게가 그리 가볍지도 않기 때문에 높은 배기량에 따른 이점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배기량을 비교했을 때, 제원 성능이 다소 아쉬웠을 뿐이지 엔진은 HR-V를 충분히 이끌었다. 특히 낮은 속도에서는 아무런 불만도 느낄 수 없었다. 반응도 즉각적이었고 토크도 풍부했다. 흔치 않은 가솔린 엔진이기 때문에 그 질감이 유독 반갑기도 했다. 특히 작은 차일수록 엔진 소음에 취약한 법지만 HR-V는 디젤 엔진이 장착된 여느 소형 SUV보다 조용하고 부드러웠다.

 

다만 속도가 높아질수록 한계는 빠르게 찾아왔다. 토크가 여유로운 편이 아니기 때문에 저속에서 느꼈던 재빠른 반응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또 CVT 변속기는 태생적인 약점을 감추지 못했다. 회전계의 바늘은 이미 레드존에 근접했지만 가속이 빠르게 붙진 않았다. 덩달아 막대한 엔진 소음까지 발생하는 상황이라 속도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아야 했다. CVT 변속기 때문에 효율성은 비교적 우수한 편이지만 디젤 엔진과 비할 바는 못된다.

 

스티어링은 예상보다 차지고, 서스펜션도 탄력이 좋았다. 불필요하게 차를 통통 튀기지 않았다. 풍기는 이미지와 달리 승차감은 꽤 성숙했다. 소형차와 패밀리 세단에 대한 많은 노하우가 있는 혼다답게 기본기에 있어서는 아쉬울게 없었다. 

HR-V는 전세계 시장에 판매되는 만큼 보편적인 성격도 컸다. 실내 디자인은 터치 스크린을 활용해 외부 버튼을 크게 줄였다. 밖으로 배치된 버튼도 전부 터치 방식이 적용됐다. 디자인이 간결하긴 하지만, 터치 스크린을 이용해 무언가를 조작할 경우 일단 기본 메뉴를 거쳐야 하는 불편도 있었다. 

 

7인치 디스플레이와 HDMI는 좋은 궁합이 아니라고 느껴졌고, 내비게이션은 없었다. 애플 카플레이나 구글 안드로이드 오토 등도 지원되지 않았다. 뒷좌석의 기발함을 생각했을때, 센터페시아에 스마트폰 거치를 위한 신선한 아이디어가 담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형 SUV는 브랜드의 특징은 물론 자신의 개성마저 제대로 담지 못할 때가 많다. HR-V는 혼다의 글로벌 소형차 계보를 잇는 모델로 단순히 유행에 편승하기 급급한 여느 소형 SUV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세그먼트의 특징도 잘 어필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남과 차별성을 두기 위한 노력이 돋보였다. 다만 트림이 단조롭기 때문에 가격적인 측면에서 경쟁력은 그리 높지 않은 것은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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