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보르기니 미우라의 거룩한 50년 “슈퍼카의 역사를 새로 쓰다”
  • 김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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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5.31 18:18
람보르기니 미우라의 거룩한 50년 “슈퍼카의 역사를 새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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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르기니 미우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슈퍼카다. 미우라의 등장은 람보르기니는 물론 페라리를 비롯한 여러 스포츠카 브랜드에게 큰 영향을 줬다. 특히 엔진을 운전석 뒤에 배치하는 리어미드엔진(Rear Mid-Engine;미드십) 레이아웃은 지금까지 슈퍼카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1966년 출시된 미우라(Miura)는 그동안 람보르기니가 내놓은 차와 완전히 달랐다. 초창기 람보르기니는 극단적인 슈퍼카를 내놓기 보단 그랜드 투어러(GT)의 성격이 짙은 차를 만들었다. 람보르기니의 창업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는 혈기왕성한 당대 최고의 엔지니어들을 스카웃 해놓고 정작 압도적인 슈퍼카를 만들진 않았다.

▲ 미우라를 만든 주역들.

당시 람보르기니가 내놓은 350 GT, 이슬레로(Islero), 에스파다(Espada) 등은 비교적 큰 인기를 끌었지만 페라리를 위협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서 람보르기니의 엔지니어들은 극단적인 신차를 개발하게 됐다. 그리고 그 극단성은 지금의 람보르기니의 거대한 정체성으로 자리잡았다.

# 미우라의 등장

1965년 람보르기니는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토리노 모터쇼’를 통해 ‘P400’으로 이름 붙여진 ‘롤링 섀시(구동과 관련된 부분만 있는 프로토타입)’를 공개했다. 

▲ 람보르기니가 1965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공개한 P400 롤링 섀시.

P400은 기존의 람보르기니와 달리 거대한 V12 엔진이 뒷차축 사이에 세로로 배치됐다. 레이스카에서는 종종 사용되는 레이아웃이었지만, 양산차에서 엔진을 운전석 뒷편에 탑재하는 경우는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열광했고, 이 차의 흥행을 의심하던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도 적극적으로 엔지니어들을 지원했다.

P400은 ‘장 파울로 달라라(Gian Paolo Dallara)’와 ‘파올로 스탄자니(Paolo Stanzani)’, ‘밥 왈라스(Bob Wallace)’ 등 다시 람보르기니를 대표하던 젊은 엔지니어들이 개발을 주도했다. 그리고 디자인은 ‘베르토네(Bertone)’의 ‘마르첼로 간디니(Marcello Gandini)’가 맡았다.

▲ 람보르기니 미우라 SV.

양산 모델은 미우라란 이름이 붙었고, 1966년 공개됐다. 혁신적인 구조와 레이스카를 연상시키는 날렵한 디자인은 단번에 람보르기니를 정상급 브랜드로 끌어올렸다. 

▲ 람보르기니 미우라 SV.

초기 미우라 P400에는 3.9리터 V12 엔진이 장착됐다. 최고출력은 350마력에 달했고,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7초 정도였다. 최고속도는 시속 275km에 달했다. 당시엔 놀라운 수준의 운동성능이었다. 람보르기니는 이후 주행성능을 개선한 P400S, P400SV 등을 연이어 출시했다.

# 미우라의 영향력

미우라는 양산차 최초의 미드십 레이아웃이 적용됐다. 람보르기니는 미우라의 성공 이후 꾸준하게 미드십 레이아웃을 발전시켰다. 미드십 레이아웃은 지금까지 람보르기니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미우라는 1966년부터 1973년까지 총 764대가 생산됐다.

▲ 람보르기니 미우라 SV.

당시 최고의 자리에 있었던 페라리는 엔진을 앞에 장착하는 FR 레이아웃을 고집했는데, 미우라의 큰 인기에 따라 1970년대부터 미드십 레이아웃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또 ‘데 토마소(De Tomaso)’를 비롯한 이탈리아의 여러 스포츠카 브랜드도 미드십 레이아웃을 도입했다.

▲ 람보르기니 미우라 SV.

람보르기니 안에서도 변화는 시작됐다. 람보르기니는 미우라를 시작으로 투우와 관련된 이름과 황소 엠블럼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미우라의 부활?

람보르기니는 미우라의 40주년을 기념해 2006년 미우라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미우라 콘셉트’를 제작했다. 당시 람보르기니의 디자인을 총괄했던 ‘발터 드 실바(Walter de’Silva)’가 디자인을 담당했다.

▲ 2006 람보르기니 미우라 콘셉트.

콘셉트카가 공개되자 많은 언론과 마니아들이 미우라의 부활을 추측했지만, 당시 람보르기니를 책임졌던 스테판 빙켈만 CEO는 “미우라는 람보르기니의 자랑스런 역사지만, 우리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만들어가는 회사”라며 “미우라는 다시 부활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타협하지 않는 람보르기니의 결정이 다소 아쉽긴 하지만, 람보르기니가 미우라를 통해 보여준 혁신성과 극단성은 여전히 람보르기니의 신차를 통해 느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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