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기의 좌충우돌] 중국에서 운전면허 따는 방법 A~Z
  • 한상기
  • 좋아요 0
  • 승인 2015.12.15 09:28
[한상기의 좌충우돌] 중국에서 운전면허 따는 방법 A~Z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국은 국제운전면허로 운전을 할 수 없는 나라다. 중국에서 운전을 하고 싶다면 중국에서 취득한 면허가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 사람이 국제운전면허를 발급받으면 약 100개국에서 운전할 수 있는데, 여기에 중국은 없다. 나처럼 중국에서도 운전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큰 장벽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중국의 운전면허 취득 과정을 소개한다.

 

# 중국 운전면허증 어떻게 따야 할까

중국에서 운전면허를 땄다는 후기는 은근히 많다. 그래도 감이 잘 안 오는 게 사실이고, 엄두도 안 난다. 일단 접수에 필요한 ‘주숙등기’ 같은 용어부터 낯설다. 이렇게 저렇게 조사를 한 결과, 중국 운전면허를 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대행 회사를 끼고 하거나 스스로 하든가 양자택일이다.

물론 중국말을 할 줄 알면 혼자서 해도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사람은 중국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행 회사의 도움을 받는 게 낫다. 나는 중국말 전혀 못 해도 스스로 했다. 엄밀히 말하면 합비(허페이) 현지에 도와준다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대행 회사 끼고 하면 쉬워서 재미가 없다. 참고로 중국 운전면허 대행 회사는 주로 산동 반도(옌타이, 웨이하이, 칭다오)에 몰려 있다. 문의해 보니 옌타이는 1300위안(23만5000원), 칭다오는 1100위안(19만9000원)을 불렀다.

 

중국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서는 크게 여섯가지의 준비물이 있다. 시청 직원이 시험장에 물어봐 다음과 같은 사진을 보내줬다. 가장 중요한 건 2번(주숙등기)과 4번(대한민국 운전면허 번역), 5번(건강검진)이다. 이 세 가지가 있어야 접수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준비해갈 것은 비자다. 90일 체류 비자가 있어야 한다. 한국 면허증이 있으면 중국에서는 필기시험만 보면 된다. 필기만 붙으면 면허증을 받는다. 그리고 이곳 합비는 면허 필기시험이 월, 목, 금에 있다고 들었다. 이건 도시마다 약간씩 다르다.

 

# 무작정 떠나, 닥치는 대로 해보기

작년에 우연히 알게 된 합비 시청 직원은 자기가 도와줄 테니 일단 오라고 했다. 중국 사람이 도와주면 어떻게든 될 거 같아서 일단 갔다. 보험을 드는 차원에서 비행기는 난징으로 들어갔다가 칭다오로 나오는 걸 끊었다. 합비 갔는데 안 되면 곧장 칭다오로 갈 생각이었다.

 

합비에 도착하니 자기보다 영어 잘하는 의대 남동생(이하 남동생)을 데리고 나왔다. 나의 계획은 이랬다. 일요일에 도착해서 당장 월요일부터 가장 중요한 주숙등기와 번역, 공증을 해결하는 것이다. 처음 하니 얼마나 걸릴지 감이 안 와서 월요일부터 서둘러야 한다.

 

모든 외국인은 중국에 방문하면 어디서 숙식하는지를 정부에 알리는 '주숙등기'라는걸 48시간내에 해야 한다. 호텔에서 묵으면 알아서 해주니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하지만 운전면허는 별도의 주숙등기가 필요하다. 이 주숙등기는 가까운 파출소나 경찰서로 가서 한다.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파출소 3층으로 가서 주숙등기를 신청했다. 단 20분 만에 나왔다.

 

어떤 도시에서는 사람 사는 주소를 요구한다고 들었는데, 이 파출소는 묵고 있는 호텔 주소를 적었다. 물론 호텔로 직접 전화해서 이 사람이 정말 묵고 있는지 확인은 했다. 따라서 내 중국운전면허증에는 호텔 주소가 적혀 있다. '남동생'과 같이 갔기 때문에 주숙등기는 간단히 해결했다.

 

반면 번역은 어려웠다. 우선 남동생이 학교 갔다 4시에 온다고 해서 혼자서 찾아갔다. 번역 사무소도 시청 직원이 찾아줬다. 어떻게 찾아가긴 했는데, 막상 혼자 가니 막막하다. 번호표 뽑고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2시 30분이 넘도록 업무를 시작하지 않아서 물어보니, 나를 다른 방으로 데려갔다. 그 방에서 영어로 대화를 시도했지만 알아듣질 못한다. 답답해서 “아 번역과 공증”이라고 했더니, 공증을 알아들었다. 공증은 ‘꽁쯩’이라고 발음하는 것 같다. 간혹 단어의 발음이 겹치는 게 있다. 그래서 대화를 계속 시도하니 번역에는 5일이나 걸린다고 했다. 도저히 5일을 기다릴 수는 없어서 남동생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것도 시청 직원과 남동생이 해결을 해줬다. 면허시험장에 전화를 걸어서 아무 개인 번역 사무소에나 가도 된다는 대답을 얻었다. 요금도 더 쌌다. 공식은 220위안(3만9000원)이지만 개인은 100위안으로 훨씬 저렴하다. 거기다 시간도 빠르다.

 

개인 사무소의 문에는 방 번호도 없다. 뭔가 정식이 아닌 냄새가 풍긴다. 뭐든 간에 면허 접수만 되면 상관은 없다.

 

번역은 한국 면허증의 한글을 발음 나는 대로 옮기는 것이다. 한문 이름이 있으면 좀 더 쉽다. 이 번역에는 30분도 안 걸렸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주숙등기와 번역을 마쳤다. 사전 조사한 것보다 훨씬 빠르다. 이제 병원 가서 신체검사만 받으면 면허 시험을 접수할 수 있다.

 

병원에는 혼자 가기 때문에 필요한 주요 질문들을 종이에 써줬다. ‘운전면허를 위한 신체검사, 몇 층?, 얼마?, (택시 기사에게 얘기 할)면허 시험장 주소’ 등이다. 병원까지는 택시로 기본 요금인데, 신체검사를 위한 병원이 시 외곽으로 변경 됐다고 했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단체로 이동했다.

 

병원에 가서는 같이 버스를 타고 온 젊은 남자가 도와줬다. 접수부터 서류 작성까지 다 해줬다. 매우 고마울 따름이다. 참고로 면허 종류는 C1이고, 접수하면 플라스틱 카드를 준다. 그리고 다시 3층으로 올라와서 신체검사를 받는다.

 

중국의 시력 검사는 우리와 좀 다르다. 우리는 숫자부터 동물 그림이 혼합돼 있지만 중국은 전부 알파벳 ‘E'이다. E가 뚫려 있는 방향을 말하는 것으로 시력을 측정한다. 시력은 1.2, 1.5가 나왔다.

 

문제는 색약 테스트인데, 이것도 의외로 쉽게 넘어갔다. 학교 다닐 때 한 반에 한 명 정도는 색약이 있었다. 내가 그 중 하나다. 웨이하이의 대행 회사는 색약일 경우 추가 요금 500위안(약 9만원)이 든다고 했다. 그래서 내심 걱정을 했는데, 그냥 통과했다.

색약 테스트 자체는 우리와 같다. 의사가 작은 책을 넘겨가면서 숫자를 물어본다. 난 색약 테스트 책의 숫자를 알아볼 수 없어서 가만히 있었다. 의사는 나의 당황하는 표정을 보더니 자기가 직접 숫자를 부르면서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끝났다. 신체검사 받으러 온 한국인도 드문데, 설마 색약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거다.

 

의외로 키가 걸렸다. 여자들 몸무게 줄이는 것처럼, 남자도 키 약간 올려서 말한다. 손짓으로 키를 물어봐서 178cm이라고 했더니 버럭 화를 내면서 다른 방으로 끌고 갔다. 여기서 키를 쟀더니 176cm가 나왔다. 의사는 거봐라 하는 표정으로 176cm를 적었고, 신체검사는 마무리 됐다. 색약은 대충 넘어가면서 키는 정확하게 측정한다. 별거 아닌 거에 민감한 의사로 이해했다. 면허를 위한 신체검사는 청력과 시력, 색약, 키 4가지만 하면 끝난다.

 

# 드디어 면허 시험, 떨린다

면허 시험장은 시내에서 약 20km 떨어진 곳에 있다. 대중교통이 없어서 택시를 타고 가야하고, 택시비는 35위안 내외가 나온다. 얼핏 듣기로 시험장 앞에 가면 문제집을 판다고 들었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접수하려면 복사본이 필요하고, 시험장에서 무료로 해준다. 막상 와보니 시험 날짜는 약간 달랐다. 기존에 알고 있던 월, 목, 금이 아니라 월, 수, 금이었다. 따라서 시험 날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시간도 2시로 고정이고 외국인은 하루에 한 번만 볼 수 있다. 다른 도시에서는 하루에 두 번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앞장은 수험표의 역할을 하고 접수에 드는 비용은 50위안(약 9,000원)이다. 50위안 내고 한 번 접수하면 시험을 두 번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두 번 떨어지면 접수를 새로 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시험을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 중국의 필기시험은 한국보다 합격 점수가 높다. 중국 필기시험은 90점을 맞아야 합격이다. 그러니까 100문제 중 10개만 틀려야 한다. 공부 안 하면 붙기가 쉽지 않다. 100문제 중 40문제는 간단한 O, X이고 나머지 60문제는 사지선다형이다. 참고로 중국은 외국인을 위해 12개의 언어로 운전면허 시험을 출제하고 있다.

시험 공부는 웹사이트를 통해서 했다. 웹사이트를 통해 기출제 문제 및 모의고사를 볼 수 있다. 유명 웹사이트로는 클릭왕과 안전넷이 있다. 가격은 안전넷이 7일 동안 100위안(약 1만 8000원), 클릭왕은 10일 동안 100위안이다. 그래서 클릭왕으로 결제했다. 

 

시험장에는 짐 보관함이 있다. 시험 시작하기 전에 책이나 가방 같은 짐을 모두 보관함에 넣어야 한다. 그런데 의외로 핸드폰은 주머니에 넣고 들어갈 수 있다. 보관함 이용은 무료다. 시간이 되면 공무원들이 수험표를 모은 후 한 명씩 입장시킨다. 한 번에 시작하는 게 아니라 자리에 앉는 대로 시험이 시작된다. 시험 시간은 총 45분이고 100문제를 풀어야 한다.

 

첫 시험에서는 85점으로 떨어졌다. 벼락치기치고는 점수가 잘 나왔지만 이것도 시험이라고 떨어지니 기분이 나쁘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모의고사와는 다른 문제가 많이 나왔고, 답의 순서도 틀렸다. 예를 들어 모의고사에 A가 답이었으면 실제 시험에서는 C였다. 그리고 낯선 환경에 당황도 했다. 시험은 컴퓨터로 보는데, 윈도우 95로 추정되는 클래식한 운영체제였다. 마우스도 잘 안 움직인다. 하여튼 100문제 중 10개만 틀리는 게 쉽지 않다고 느꼈다.

한 번 떨어지니 정신이 번쩍 든다. 두 번째도 떨어지면 다음 주까지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서 호텔로 돌아와서는 밥만 먹고 공부만 했다. 하루 반 동안 호텔 밖으로 딱 한 번 나갔다.

 

문제의 상당수는 상식적이지만 헷갈리는 것도 많다. 대부분은 암기의 영역이다. 반면 위의 문제처럼 이해가 필요한 것도 있다. 이 문제의 답은 3번이다. 기차만 그려져 있으면 관리원이 없는 철로 건널목이고, 빨간색 사선 하나당 50m의 거리를 나타낸다. 허선(점선) 같은 낯선 단어도 있다. 그리고 가장 안 외워지는 것은 교통경찰의 수신호다.

 

이틀 뒤에 다시 시험장을 찾았다. 1층에서는 사람들이 책을 보면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앱'으로 공부하는 사람은 나뿐이다.

 

두 번째에서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일단 모의고사에서는 계속 90점을 넘었고, 시험 직전에는 99점이 나왔다. 이번엔 분명히 붙는다고 자신했다.

처음과 두 번째는 확실히 다르다. 윈도우 95, 비행기 이코노미보다 좁은 좌석에도 완벽히 적응했다. 그리고 문제도 쉬웠다. 아는 문제가 많이 나왔다. 그래도 만전을 기하기 위해 45분 중 40분을 쓰고 나왔다. 여러 번 확인했다. 시험이 끝나면 결과는 바로 볼 수 있다. 화면의 ‘피니시’ 버튼을 누른 후, 다시 한 번 확인 버튼을 누르면 점수가 뜬다.

 

97점 나왔다. 막상 붙고 나니 내가 어째서 3문제나 틀렸을까 하는 거만한 생각도 들었다. 거만한 얼굴로 걸어 나오니까 감독관 3명이 모두 웃었다. 나오면 수험표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1층 창구에 제출하면 면허증이 발급된다.

 

# 드디어 면허증을 손에 쥐다

창구에 서류를 제출하면 10분도 안 돼서 면허증이 나온다. 합비는 주숙등기부터 해서 모든 일처리가 빨리 진행됐다.

 

중국 운전면허증은 얇은 가죽 케이스에 넣어준다. 색상만 다르지 차량등록증과 크기와 디자인이 동일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면허증에 적힌 주소가 호텔이다. 올해 3월 20일에 발급받았고, 2021년 3월 21일까지가 유효기간이다. 중국의 운전면허는 6년 뒤에 첫 갱신을 하고, 만료 90일 이전에 해야 한다. 따라서 면허증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 2021년까지는 합비의 면허 시험장에 올 일 없다. 면허증 갱신은 발급받은 도시에서 한다. 참고로 중국은 운전면허 취득 후 1년 동안은 고속도로에서 운전할 수 없지만 외국인은 예외다. 그래서 다음 달에 렌터카를 운전해 합비에서 난징을 다녀올 수 있었다.

 

중국 면허는 생각보다 빠르게 땄다. 최대 12일 정도를 생각했는데, 6일 걸렸다. 일요일에 합비 도착해 금요일에 면허증을 받았다. 중국말을 모르면 혼자서 면허를 따기는 쉽지 않다. 나 역시도 합비의 시청 직원과 그녀의 남동생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근데 한 번 해보니 혼자서도 할 만하다. 서류 준비를 위한 파출소, 번역 사무소, 병원, 면허시험장의 위치를 전부 외워뒀다. 물론 중국 친구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지금도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합비는 강호의 도의가 살아있는 곳이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