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 칼 벤츠가 세계 최초의 자동차 '페이턴트 모터바겐'을 만든지 벌써 130여년이 흘렀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대체로 '빠르고 편안한 자동차'를 만든다는 일관된 흐름을 따랐다. 그러나 앞으로는 다르다. 이미 자동차 산업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겪지 못했던 급격한 변화에 직면하게 됐다.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변화의 원인은 간단하다. 하나는 환경 오염과 자원 고갈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변화가 필요해졌다는 점, 다른 하나는 자동차를 현재 상태로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을 정도로 기술이 발달했다는 점이다. 

가장 중요한 이슈는 크게 3가지를 꼽을 수 있겠다. 첫 번째는 내연기관 자동차의 연료 효율을 높인 친환경 자동차, 두 번째는 전기차와 수소차 등 내연기관을 탈피한 미래 자동차, 세 번째는 첨단 기술로 무장한 자율주행자동차다.

공교롭게도 정부와 업체들은 이 3가지를 모두 2020년부터 구체화·상용화시킨다는 목표다. 과연 5년으로 가능할까 의심이 들지만, 막상 급변하는 자동차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것을 보면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다가올 현실이라는 생각도 든다.

◆ 연비 나쁘면 차 못 팔아, 정부 "친환경 자동차 만들라"

▲ 세계 각 국가들이 2020년까지 연비를 20km/l 이상으로 향상시킨다는 계획이다

2020년까지 연비를 크게 향상시킨다는 것은 어느 정도 강제된 목표라고 볼 수 있겠다. 지금까지는 잘 팔린다는 이유로 연비 좋은 차를 자율적으로 만들었다면, 앞으로는 저탄소협력금제도 등 정부 차원에서 만든 친환경 자동차 규제에 맞춰야 한다. 최근의 다운사이징 열풍과 변속기 다단화, 하이브리드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개발 등도 이러한 흐름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산업부와 환경부가 2020년부터 자동차 평균 연비를 20.0km/l 이상으로 높이기로 하고,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조율하고 있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는 조치다. 만약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자동차업체는 에너지이용합리화법에 따라 과태료가 부과될 예정이다.

▲ 환경부가 추진한 저탄소협력금제도 방안

당초 올해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던 저탄소협력금제도는 논란 속에 2020년으로 미뤄졌다. 환경부가 추진하는 이 제도는 탄소 배출량이 많은 차량에 부담금을 걷고, 이를 적게 배출하는 차량에 보너스로 주는 정책이다. 구체적으로는 탄소 배출량 271g/km 이상은 300만원을 내고, 40g/km 이하는 300만원을 받는 등 등급에 따라 차등 적용된다. 그러나 디젤차 위주의 수입차 업체에 유리하다는 지적 등을 받아 시행이 연기됐다.

이에 맞춰 현대기아차도 2020년까지 차세대 파워트레인 개발, 경량화, 친환경차 라인업 확대 등을 통해 자사 모델의 평균 연비를 25% 향상시킨다는 계획이다. 현재 보유 중인 10종의 엔진 라인업의 70%를 신형 엔진으로 바꾸고, 기존 변속기 개선 및 다단화 변속기를 개발한다. 또, 초고장력 강판과 고강도 알루미늄휠과 발포플라스틱 내장재 등 경량화 소재 사용도 늘린다. 여기에 하이브리드부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수소차까지 친환경차를 늘릴 예정이다.

▲ 작년 8월 현대차가 공개한 친환경차 출시 계획

해외 주요 국가 역시 친환경을 위한 적극적인 연비 늘리기에 나섰다. 일본은 2020년까지 의무적으로 20.3km/l 이상의 연비를 갖추도록 할 예정이며, 유럽도 26.5km/l의 연비 규제를 시행할 계획이다. 미국은 2025년부터 23.9km/l 이하의 자동차는 판매하지 못하는 법을 추진 중이다.

프랑스 정부의 경우, 디젤차 줄이기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자국 제조사들에게 2020년까지 50km/l 이상의 자동차를 만들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1리터로 100km를 달리는 르노 이오랩도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모델이다. 푸조와 시트로엥 역시 초고효율 자동차 개발에 열중이다. 

▲ 각 자동차 제조사의 DCT 변속기 발표 현황

폭스바겐은 10단 DSG(듀얼클러치변속기)를 개발해 2020년까지 연료 효율을 15% 이상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 변속기는 가로배치 엔진과 세로배치 엔진 모두 탑재가 가능하며, 사륜구동에도 적용할 수 있다. 특히, 허용 최대토크가 51.1kg.m여서 다양한 모델에 사용될 전망이다.

◆ 전기차vs수소차, 미래 자동차를 둘러싼 '에너지 싸움'

전기차와 수소차는 미래의 주력 에너지를 둘러싼 주도권 싸움인 측면이 강하다. 두 차 모두 연료 전지를 사용한다는 점은 같지만 이를 전기로 충전할지, 수소로 충전할지 에너지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비용과 공간 등의 문제로 모든 인프라를 건설할 수 없으며, 정부에서 제공하는 보조금에도 한계가 있다. 얼마 후면 선택의 갈림길에 서야 한다는 이야기다.

▲ BMW의 전기차 i3

전기차는 상용화 및 인프라 구축이 상당 부분 진행됐고, 수소차보다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주행 거리가 짧고 충전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은 여전하다. 게다가 전기차에 사용하는 전기를 만들려면 화석연료나 원자력 등 다른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이는 배출가스나 핵폐기물 등이 발생한다는 것이어서 '진짜 친환경차인가'에 대한 논란을 낳기도 했다.

수소차의 경우 주행 거리가 길고, 배출가스나 폐기물이 없는 완전 친환경차라는 장점이 있지만, 가격을 얼마나 빨리 낮출 수 있느냐, 수소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확보할 수 있느냐, 충전소 설립 등 인프라 구축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등이 과제로 남아있다.

▲ 도요타가 만든 수소차 미라이 드라이브트레인

현재로써는 수소차보다 전기차의 미래가 더 밝은 편이다. 정부는 2020년이 되면 국내 친환경차 보급이 100만대를 넘길 것으로 예상했으며, 중국 전기차 판매량도 200만대 수준으로 올라설 전망이다. BMW 역시 전기차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판매량이 일반 자동차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으며, 애플도 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게다가 2020년에는 배터리 가격이 절반 이하로 내려가고, 에너지 밀도(배터리 용량)도 3배 이상 늘어 전기차의 가장 취약점인 '짧은 주행 거리'가 획기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발맞춰 테슬라는 5조원 투자해 초대형 배터리 공장인 '기가팩토리'를 만들고 2020년부터 가동할 예정이다.

▲ 국내에 판매되는 전기차 7종 비교표

수소차의 경우 전기차에 비해 진행 속도가 다소 더디다. 국내에서는 정부가 2020년까지 국내에 수소차 500대를 보급하고 충전소를 현재 13곳에서 23곳으로 늘리고, 2025년까지 200곳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는 수소차 일반인 보급을 시작해 대중화에 나설 예정이다.

도요타는 전기차보다는 수소차에 집중하고 있다. 전기차는 주행 거리가 짧고, 충전 시간이 길다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어 대중화되기 전에 완성도 높은 수소차가 나와 전기차를 대체할 것이란 주장이다. 도요타는 2020년까지 수소차의 가격을 3~5000만원 수준으로 낮춘다는 계획이다.

◆ 운전할 필요 없는 자율주행자동차, "사고 나면 어떻게?"

▲ 린스피드에서 테슬라 모델S를 기반으로 만든 자율주행차 엑스체인지

흔히 무인자동차라고 불리는 자율주행자동차는 최근 자동차에 적용되는 첨단 기술의 완성형 버전이다. 앞차와의 간격에 따라 속도를 조절하는 크루즈컨트롤 시스템, 차선 이탈 시 경고를 하거나 스티어링휠을 움직여 차로를 유지하게 하는 차선이탈방지·코너링 시스템, 갑작스런 충돌에 대비해 차량을 멈춰주는 세이프티 시스템, 주변 상황을 360도 보여주는 어라운드뷰 시스템, 주차를 도와주는 자동주차 시스템, 현대차 블루링크 같은 쌍방향텔레메틱스 시스템 등이 모두 갖춰지면 자율주행차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 자율주행차의 원리

문제는 제도다. 관련 법규부터 보험 체계까지 싹 뜯어고쳐야 비로소 자율주행자동차 시대가 열릴 수 있다. 당장 가벼운 사고만 나도 책임소재를 둘러싸고 혼란이 벌어질게 뻔하다. 현재까지 이런 능동적 주행보조장치로 인한 사고의 책임은 어디까지나 운전자에게 있다. 자율주행자동차를 믿고 탈 수 있는 제도의 개선과 잠재적인 결함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이에 정부에서는 2020년까지 관련 기준 및 보험, 리콜 등의 제도를 정비한다는 계획이지만, 어느 정도 구체화할지는 의문이라는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자율주행자동차의 선두주자는 구글로, 자사의 웹지도인 '스트리트뷰'와 GPS, 카메라, 각종 센서 등을 결합해 사람이 운전하지 않더라도 주행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이미 수십만km의 시험 주행을 마친 상태로, 주변 환경을 완벽에 가깝게 읽어내며 안전하게 주행하는데 성공했다. 구글은 2020년까지 자율주행자동차 상용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볼보는 '안전'의 대명사답게 사고를 줄이기 위해 자율주행자동차를 개발 중이다. 현재 2017년 100대의 자동차로 자율주행을 하는 '드라이브미'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데, 2020년까지 '사고 제로'를 목표로 볼보를 타다가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최근 다양한 자율주행자동차를 선보인 BMW와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등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도 자율주행자동차 기술을 업그레이드해 2020년부터 상용화시킬 예정이다. 도요타와 포드, 닛산 등도 자율주행자동차의 양산 시점을 2020년으로 잡았다.

▲ '자율주행차에서 하고 싶은일'에 대한 설문 결과

국내에서는 현대기아차가 2020년 국내 완성차 업체 중 최초로 자율주행차 상용화에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쌍용차도 자동차부품연구원과 자율주행자동차 개발 협약(MOU)을 체결하고, IT 융합기반의 자율주행자동차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 머지 않은 미래,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 

2020년까지는 고작 5년도 남지 않았다. 짧은 시간 동안에 얼마나 달라질까 의심도 들지만, 분명한 것은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는 것이다. 2008년 옴니아가 처음 나왔을 때 누가 과연 갤럭시S6를 상상했겠는가.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영화에서처럼 자동차가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레일 위를 달리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다만, 다른 선진국이나 톱티어(일류) 브랜드에 비해 국내의 준비는 너무도 부족해 보인다. 정부는 근본적인 대책 없이 보조금만 주는 보여주기식 행정에 급급하고, 미래를 대비한 법규 마련도 더디기만 하다. 업체 역시 아직도 패스트팔로워(빠른 추격자)에 만족하는 듯 시장을 선도할만한 기술 개발에 소극적인 모습이다.

현재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기득권은 변화를 싫어하는 듯 보이지만, 누구보다 치열하게 미래를 대비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전기차와 자율주행자동차를 개발하고, 석유 기업들이 새로운 에너지 사업에 누구보다 많은 투자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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