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쿠페는 BMW의 전매특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02’ 시리즈는 오늘날 BMW의 이미지를 이룩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당시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던 ‘1602’나 ‘2002’의 탄탄한 주행성능과 젊은 감각은 오늘날 2시리즈로 고스란히 이어졌고, 4시리즈는 BMW M 신화를 이끌어낸 M3의 역동성과 디자인을 물려받았다.

2시리즈와 4시리즈는 단순히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다. 전세대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1시리즈 쿠페나 3시리즈 쿠페와 비교해 모든 면에서 괄목할 성장을 이뤘다. 마치 운전자가 차의 일부분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일체감이 뛰어나고 코너링과 핸들링은 날이 섰다. 또 실내 공간은 더욱 넓어져 뒷자리에 타는 것이 결코 불편하게 다가오는 것도 아니다.

 

BMW의 소형 쿠페 신화를 이어갈 220d와 428i를 시승했다. 두 모델 모두 M 스포츠 패키지가 적용됐고, 가격은 각각 5190만원, 6420만원이다. 

◆ BMW에서만 느낄 수 있는 핸들링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220d와 428i에 모두 장착된 M 스포츠 서스펜션이다. 특히 국내서 판매되고 있는 4시리즈에는 기본으로 M 스포츠 서스펜션이 달린다. 확실히 일반 서스펜션과는 차원이 다르다. 힘껏 스티어링휠을 돌리면 비로소 빛을 본다. 연속된 코너를 지날때도 차의 하중 이동을 아주 밋밋하게 만든다. 최상의 좌우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급감속과 급가속에서도 차체의 앞뒤 쏠림을 억제한다.

 

2시리즈는 작은 차체에서 느낄 수 있는 민첩함이 가장 큰 무기다. 이건 누구도 흉내낼 수 없다. 온전히 2시리즈에서만 느낄 수 있다. 스티어링의 즉각적인 반응은 미니나 로터스를 연상시키는데 그보다 한층 세련됐다. 재빨리 방향을 바꿔도 위화감이 들지 않고 회전반경 자체도 극도로 좁다. 차체 한계나 밸런스는 오히려 숫자가 높은 형들을 겸손하게 만들 정도라서 맘놓고 스티어링휠을 돌려도 알아서 받아준다.

 

센터콘솔 왼편, 그러니깐 오른쪽 무릎이 닿는 곳은 친절하게 인조가죽으로 덧대있다. 다리에 힘 꽉 주고 마음껏 잡아 돌리란 얘기다. 코너에서의 2시리즈는 마치 내가 엄청난 와인딩 고수라는 착각이 들게 할 정도다.

220d가 원초적인 '핸들링 머신'이라면 428i는 훨씬 '젠틀'하다. 긴장감은 다소 덜하지만 더 유연하고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코너를 빠져나간다. 또 안정감은 훨씬 앞선다.

 

4시리즈는 BMW 전차종을 통틀어서 무게중심이 가장 낮다. 도로에서 고작 130mm 높은 곳에 엉덩이가 위치했다. 그래서 거진 털썩 주저앉게 된다. 2시리즈에 비해 차체는 큰데 높이는 56mm나 더 낮고 너비는 51mm 넓다. 코너에서의 안정감은 비교가 안된다. 시종일관 바닥에 붙어있는 것 같다. 아주 정석적인 BMW의 느낌이다. 2시리즈에서 내려 곧바로 탔는데도 차가 크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움직임이 날래다.

 

너무 안정감이 높다보니 나도 모르게 코너에서도 가속페달에 발이 간다. 코너를 도는 우아한 궤적이나 가솔린 엔진의 날카로운 소리는 무척이나 섹시하다. 3시리즈를 기반으로 만들었지만 이건 3시리즈와 완전히 다른 차고 BMW 특유의 핸들링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

 

◆ 가솔린의 짜릿한 고회전과 디젤의 화끈한 폭발력

고속주행에서는 두 차의 차이가 극명했다. 비록 ‘실키식스’는 아니지만 428i에 탑재된 직렬 4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은 무척 맛깔스럽다. 과격하진 않지만 오랜만에 듣는 BMW의 앙칼진 고회전 소리는 꽤나 자극적이다. 연비에 대한 부담은 충분히 날려버릴만 하다. 단, 폭발적인 배기음을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겠다.

 

생각만큼 빠르다. 속도는 쉼없이 올라간다. 마치 듀얼클러치를 보는 듯한 M 스포츠 8단 자동변속기는 아주 신속하고 힘을 줄기차게 뽑아낸다. 판단도 빠르다. 가속페달을 꾹 밟음과 동시에 기어를 두어단 낮추고 회전수를 높인다. 계기바늘마저 탁탁 절도있다. 속도가 높아질수록 차는 더 도로에 달라붙는다. 묵직한 스티어링휠은 신뢰감을 더욱 높인다. 제한된 최고속도가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로 힘은 넉넉하다. 

 

220d에 장착된 2.0리터 디젤 엔진은 익숙하다 못해 조금 지겹기도 하다. 효율이 강조된 이 엔진이 BMW를 BMW 답지 않게 만드는 큰 요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지루하기 짝이 없던 520d보다 약 300kg이나 가벼운 2시리즈에 실리니 느낌이 완전히 새롭다.

 

저속에서는 온몸을 들썩이게 할 정도로 힘이 넘친다. 디젤 엔진은 대부분 고속으로 접어들면 특유의 힘이 반감되는데 220d는 고속에서도 펀치력이 살아있다. 분명 428i가 가속 능력은 뛰어나지만 긴장감은 220d가 앞선다. 또 그리 가속 능력에서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다.

M 스포츠 8단 자동변속기도 일반 모델에 비해 훨씬 적극적이다. 나름 고회전까지 이끌어가고 변속할때마다 둔탁한 충격까지 내며 흥분을 고조시킨다. 같은 파워트레인이라도 뚜렷한 차별점을 뒀다.

 

◆ 쿠페의 기본 덕목 “예쁘거나 멋있거나”

428i는 대놓고 몸매 자랑이다. 지붕에서 트렁크까지 완만하게 이어지는 체형과 앞팬더에서 테일램프까지 그어진 선, 도톰하게 살이 오른 뒷팬더는 4시리즈를 육감적으로 보이게 한다. 차든 사람이든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와야 끌리게 되는 법이다. 3시리즈에 비해 이목구비는 훨씬 또렷해졌고, 428i에는 M 에어로 다이나믹 패키지, M 19인치 휠 등도 적용됐다. 겉모습만 본다면 M4 부럽지 않은 수준이다.

▲ BMW 428i.

M 스포츠 패키지가 적용된 만큼 속살도 화려하다. 섹시한 가죽 색상이나 M로고가 박힌 스티어링휠, 허리를 꽉 감싸안는 M 스포츠 시트까지 두루두루 부족한 것이 없다. 헤드업 디스플레이, 서라운드 뷰, 터치 패드가 적용된 iDrive 등을 통해 지적인 매력까지 갖췄다.

▲ 428i 계기반.

의외로 뒷좌석이 넓다는 점은 4시리즈의 또 다른 장점이다. 3시리즈 쿠페와 가장 차별화된 점 중 하나다. 알고보면 4시리즈는 3시리즈 세단에 비해 차체가 크다. 타고 내리기가 세단에 비해 다소 불편할 뿐이지 일단 뒷좌석에 앉으면 좁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앉은 키가 유별나게 크지만 않다면 머리 공간도 어느 정도 수긍할 정도다.

▲ BMW 220d.

220d는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이다. 전작인 1시리즈 쿠페, 현재 판매되고 있는 1시리즈 해치백 어느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 최근 BMW가 밀고 있는 ‘앞트임’도 적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굉장히 신선하다. 또 ‘역동’이나 ‘예리함’ 등 2시리즈의 이미지를 잘 담고 있다. 참 야무지다. M 스포츠 패키지가 적용되지 않은 모델은 조금 밋밋하기도 한데 국내 판매 모델은 18인치 휠이나 M 에어로 다이나믹 패키지 등을 통해서 한껏 멋도 부렸다.

▲ 시트 폴딩을 통해 기다란 짐도 수월하게 넣을 수 있다.

실내는 M 스티어링휠이나 M 스포츠 시트를 제외하면 1시리즈 해치백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비게이션이 장착되지 않은 점과 그로 인해 다소 간소해진 iDrive가 적용된 것은 아쉽다. 순수한 ‘드라이빙 머신’이라고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놓인다.

◆ “가장 BMW답다”

사실, 최근 몇년동안 BMW가 내놓은 신차의 주행성능은 다소 밋밋했다. BMW라서 더욱 엄격했을 수도 있지만 분명 부드러운 성격이 강조된 것만큼은 사실이다. 많이 팔기 위해서라지만 별도의 고성능 모델이 아닌 기본 모델에서도 으레 BMW 특유의 날카로운 핸들링을 기대하는 이는 많고, ‘BMW 마니아’라면 최근 신차에 적잖이 실망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2시리즈와 4시리즈는 BMW가 정말 작정하고 만들었다. 포르쉐 부럽지 않다던 BMW의 핸들링이 살아있다. 그러니 BMW가 더 얄밉기도 하다. 이렇게 만들 줄 알면서 그동안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2시리즈와 4시리즈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새로운 이름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분명 2시리즈와 4시리즈는 가장 ‘BMW스러운’ 모델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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