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n 칼럼] 사회적 현실과 자동차 판매 순위 사이의 괴리
  • 김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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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6.17 11:36
[Erin 칼럼] 사회적 현실과 자동차 판매 순위 사이의 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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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경기일 때 불경기를 대비하고, 불경기일 때 호경기를 대비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경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요, 눈 앞의 현상을 쫓다간 다음 트렌드를 따라갈 수 없다는 뜻에서 꺼내본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자동차판매를 보면 매우 신기합니다. 불경기라는데, 모두가 힘들다는데, 사람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데, 출산율이 뚝뚝 떨어진다는데, 인기차종을 보면 이런 사회적 변화의 특징이 전혀 읽히지 않거든요.

2019년 4월 국산차 판매순위

4천만 원이 훌쩍 넘고 전장 5미터에 가까우며 8명을 태울 수 있는 팰리세이드. 
지금은 상당히 대중화 됐지만 여전히 국산 고급차 대명사인 그랜저.
둘째를 낳은 부모들이 산다는 싼타페와 쏘렌토(8위). 거기에 셋째까지 넉넉하게 태울 수 있는 카니발.
이런 차들이 자동차 판매 최상위 랭킹에 포진해 있습니다. 수입차로 가면 이야기가 더 명확해집니다. 최소 6천만 원이 넘는 벤츠 E-클래스가 가장 많이 팔리는 나라니까요.

판매순위만 보면 3천만 원이 넘는 중형SUV를 모두가 턱턱 살 만큼 경기가 좋고, 최소 7명은 태울 수 있어야 팔릴 만큼 대가족 구성원이 많고, 주차난 교통난 같은 건 남의 나라 얘기일 만큼 큰 차들이 팔립니다. 경기가 훨씬 더 나빠졌을 때 판매 최상위에 경차가 잠깐 들어오거나, 디젤 소동이 일어났을 때 가솔린판매가 오르는 등의 변화폭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넓은 관점에서 우리나라 자동차판매순위 상위권은 늘 어느 정도의 크기와 가격을 갖춘 묵직한 차들이 차지했습니다.

분명히 사회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과, 많이 팔리는 인기차종 사이에 뭔가 괴리가 있는 것이지요.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익숙한 그림

상대적 비교대상으로 부동산시장을 예로 들죠. 결혼하는 젊은이가 줄고, 출산율이 떨어지자 곧바로 대형평수 아파트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동시에 소형평수 아파트와 원룸이 급격하게 늘어났지요. 가구나 인테리어 용품 또한 저렴하게 구매해, 오래 사용하지 않을, 크지 않은 제품들이 많이 팔립니다. 완전히 가볍고 단기적인 1인가구 중심으로 재편된 것이지요. 꽤 빠르게 말입니다. 부동산의 경우 사회의 변화양상에 얼마나 정확하고 빠르게 반응하냐에 따라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 손해와 이익에 큰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자동차는 어차피 소비재입니다. 가만히 세워두기만 해도 구매액과 나중에 되팔 금액의 차이만큼 손해입니다. 처음부터 금전적으로 손해 보는 것을 알고 접근하는 제품이라서 사회적 변화양상에 대한 예민도가 떨어집니다. 이득을 볼 게 아니라면 자동차가 나에게 어떤 가치를 가져다 주느냐가 중요합니다. 분명 이동편의성뿐 만이 아닌 ‘플러스 알파’가 있지요. 단순 이동편의성만을 위한다면 현재 전세계적 흐름인 쉐어링카가 더 나을 겁니다. 하다못해 택시를 매일 타는 게 직접 운전하지 않으면서도 자동차를 소유하는 것보다 경제적이니까요.

‘플러스 알파’는 자동차를 구매해본 적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강하게든 약하게든 알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자동차 라는 제품의 상징성입니다. 내 삶에 이 자동차를 들여왔을 때 완성되는 이미지, 이것이 매우 중요한 제품인 것이죠. 즉, 자동차가 내 이미지를 대변해주는 역할인 것입니다. 그 이미지는 브랜드로도 구축되고, 차종으로도 만들어지며, 차의 크기로도 형성됩니다. 특히, 도로에 나가면 오와 열을 맞춰 다른 차들 사이에 배치 당하기(?) 때문에 크기가 주는 위압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조그만 경차를 타고 나갔을 때와 넉넉한 대형차를 타고 나갔을 때 형성되는 이미지, 운전자가 느끼는 감정적 차이가 분명하지요.

이미지라는 가치를 자동차에 추구하는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느 나라에서나 존재합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가 확실히 있습니다. 대개 모터리제이션(자동차의 대중화)을 먼저 겪은 순서대로, 자동차에 플러스 알파적인 요소도 덜 추구하게 되는 듯 합니다.
자동차가 완전히 도구화 되어버려 상자 같은 경차밖에 팔리지 않는 일본이나, 쉐어링카가 급속도로 늘고 있는 유럽. 이들에 비해 우리나라는 자동차의 대중화가 더 나중이었고, 그만큼 자동차를 내 이미지와 동일시 여기는 플러스 알파적 추구도 더 강하게 남아있는 것입니다. 실생활에서의 불편함이나 부담스러움을 감수하면서까지 말이죠.

그 결과, 자동차 판매 상위모델에 사회적인 현상이 반영되지 않는 괴리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러한 심리를 알고 한국 소비자에게 실질적으로 더 필요한 모델이나 서비스를 내놓지 않은 자동차 회사들 탓도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자동차에 추구하는 플러스 알파적인 요소가 자동차판매에 언제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인지 여부입니다. 즉, 자동차 판매에 사회적인 현상이 반영되는 시점이 궁금한 것이죠.

저는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근거 중 하나는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 역사상 늘 최대 수요층이었던 30대의 구매율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30대의 신차구매비중은 15.4%로 은퇴를 앞둔 50대보다도 낮았습니다. 취업난과 학자금대출에 허덕이는 20대 구매비중이 늘어날 가능성은 없으니 사실상 자동차 시장에 들어오고 안착하는 연령층이 모두 쪼그라들어버린 것입니다. 

‘자동차=나’라는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그 동안 무리를 해서라도 자동차 구매에 나섰던 ‘큰 손 30대 연령층’마저 이제는 자동차에서 힘을 빼는 단계인 것 같습니다. 이들이 자동차보다 먼저 포기한 것은 큰 집이었고, 이를 통해 1인가구를 대세로 만들었듯, 커다란 모델이 팔리는 지금 자동차시장에도 큰 변화가 예상됩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큰 차를 좋아하니, 큰 차 위주의 순위가 쉽게 바뀌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생각 외로 금방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쉐어링카 등으로의 급격한 이탈로 자동차시장 전체가 휘청거릴 수도 있지요. 

서두로 돌아가겠습니다.
‘눈 앞의 현상을 쫓다간 다음 트렌드를 따라갈 수 없다’
큰 이익을 안겨주는 커다란 차들이 판매랭킹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2019년 상반기지만, 우리네 자동차회사들이 앞으로도 존속하기 위해서는 어서 빨리 물밑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은 변화들에 귀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귀를 기울여야 할 곳이 꽤나 명확해 보이는 건 불행 중 다행입니다.

‘3천만 원이 넘는 중형SUV를 모두가 턱턱 살 만큼 경기가 좋고, 최소 7명은 태울 수 있어야 팔릴 만큼 대가족 구성원이 많고, 주차난 교통난 같은 건 남의 나라 얘기일 만큼 큰 차들이 팔린다.’ 
이 문장에서 불편한 부분들, 괴리가 발생한 사안들, 현실과의 갭이 큰 지점들, 여기에 해답의 근거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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