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시트로엥 C5 에어크로스…시트로엥을 다시 보게 만드는 차
  • 김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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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5.17 16:06
[시승기] 시트로엥 C5 에어크로스…시트로엥을 다시 보게 만드는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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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정형화된 것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것은 고통과 시간을 수반한다. 시대가 새로운 것을 포용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변화의 과정 자체가 고통의 시간이 된다. 낡은 것에 대한 반기를 들었던 여러 예술 운동은 대부분 빠르게 불타고 소멸했다. 예술은 언제나 새로움, 새로움을 반대하는 새로움이 쌓이며 흘러왔다.

시트로엥의 변화는 예술의 흐름을 닮았다. 즉흥적이고, 때론 극단적이기도 하다. 안톤 체호프의 소설처럼 시트로엥은 ‘진부함은 공포’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시트로엥의 역사적인 자동차를 살펴봐도 비슷한 구석, ‘정체성’이라고 부를만한 부분은 드물다. 대신 언제나 유연하게 시대를 담았고, 특유의 재치로 이를 풀었다.

농부들을 위해 그린하우스가 볼록 솟은 자동차를 만들었고, 모험심이 가득한 젊은이들을 위해 뚜껑을 쉽게 떼어낼 수 있는 소형 SUV를 만들었고, 쿠페의 우아함을 높이기 위해 진보된 유압식 서스펜션을 만들었다. WRC를 점령할 땐 작고 주행성능이 탄탄한 소형차를 내놓았다. C5 에어크로스는 복잡하고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즐겨야 하는, 변덕쟁이로 가득한 21세기를 위해 태어났다.

프랑스와 유럽에 국한된 것만 같았던 그들의 고집스럽던 취향도 변화를 겪었다. 더 넓은 세계로 가기 위한 준비가 담겼다. PSA그룹은 브랜드의 위치나 성격을 더 명확하게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푸조가 표면적으로는 그룹의 중심이지만, 시트로엥과 DS의 역할은 더 커지고 있다. 시트로엥은 ‘편안함’이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편안함은 다분히 복잡하다. 우리는 편안함을 얘기하면 대부분 ‘승차감’이라는 영역에서만 이를 찾으려 할테지만 시트로엥은 더 복합적으로 말하고 있다. 다가가기 편안한 디자인, 마치 거실처럼 편안한 실내 공간, MCP와 결별하고 얻은 편안한 승차감,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실용성 등 시트로엥은 전방위적인 ‘편안함’을 강조하고 있다.

시트로엥은 더이상 난해하고 어렵지 않게 자동차를 만들고 있다. 독한 ‘프렌치 감성’을 조금 내려놓았다. 디자인이 모던해지면서 자연스럽게 호감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조금 평범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진부하지 않다. 시트로엥만의 감성이 곳곳에 남아있다. C5 에어크로스는 현대차 투싼과 비슷한 크기지만, 그보다는 더 커보인다. 어깨도 높고, 면이 강조된 디자인이 적용되면서 거대하고 늠름하게 보인다. 두루두루 매력적인 부분이 꽤 많다.

실내는 아늑한 느낌을 주는 컬러와 푹신한 쿠션을 넣은 시트가 인상적이다. ‘톤 앤 매너’가 좋은 셈이다. 스티어링휠이나 시트에 사용된 가죽의 질감도 좋다. 손끝이 자주 닿는 곳은 비교적 좋은 소재가 사용됐고, 마감도 신경썼다. 디지털화에 적극적인 모습도 이례적이면서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뒷좌석의 구조 신기하다. 완벽한 3인승을 추구하고 있다. 일반적인 자동차와 달리 3개의 엉덩이 받침 면적이 동일하며, 전부 독립적으로 슬라이딩된다. 세명이 모두 평등하게 앉을 수 있지만 한명이나 두명이 타게 되면, 어쩐지 손해를 보는 기분이다. 시트 이음새나 안전벨트 때문에 다리를 쫙 벌리고 여유롭게 앉기 힘들다.

엔진의 힘이 증가하고, 아이신이 제작한 8단 자동변속기가 조합되면서 한층 여유롭고, 부드럽게 달릴 수 있게 됐다. 예전 MCP 변속기가 달렸을 때의 시트로엥과는 완전히 다르다. 푸조나 DS도 상황은 같다. 극단적이진 않지만 여전히 효율도 뛰어나고, 힘은 풍족하다. 같은 배기량의 독일 엔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다만, 우리나라에 소개되고 있는 PSA그룹의 파워트레인이 다양하지 않고, 성격이나 반응도 동일하다보니 제각각의 특색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쉽다.

서스펜션의 구조적 특징은 단순하지만, 댐퍼와 스프링의 조율은 뛰어나다. 유압식 댐퍼는 실린더 내부에서 충격을 더 완화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승차감도 좋지만, 빠른 속도로 달릴 때의 탄력이 더 인상적이다. 스티어링의 반응도 즉각적이다.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의 발전은 점차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엔진이나 변속기, 섀시 등 자동차의 기본적인 기술보다 변화 흐름이 빠르다. C5 에어크로스가 보여주는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은 체급이 비슷한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와 동등하거나 조금 더 우월하다. 스스로 차선 중앙에 놓이게 달리며, 또 앞차를 따라 속도를 줄이거나 높인다. 완전히 멈추거나 재출발도 가능하다. 심지어 신형 쏘나타의 ‘빌트인캠’처럼 전방 상황을 기록하는 ‘커넥티드캠 시트로엥’도 있다.

시트로엥은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브랜드의 입지를 확고히 하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히트 상품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인기를 끄는, 인기를 끌 수 있는 제품이 있으면 브랜드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으로 보인다. C5 에어크로스는 그동안 시트로엥에 우리나라에 소개한 차량 중에서 가장 경쟁력이 높고, 완성도도 뛰어나다. 브랜드를 알리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기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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