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n 칼럼] 디자인 표절을 찾아내고 싶은 본능
  • 김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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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07 10:18
[Erin 칼럼] 디자인 표절을 찾아내고 싶은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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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자동차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어로 촬영하기 때문에 구독자 중 70%이상이 일본인인데, 요즘 이들을 보며 느끼는 점이 있습니다.

‘역시 사람은 어디나 똑같다’

라는 것이죠. 우리나라 사람이나, 일본 사람이나, 아마도 추측하건대 그 외의 다른 나라 사람 또한 마찬가지로, 신차를 볼 때의 반응이 똑같다는 뜻입니다. 어떤 국가, 어떤 브랜드의 자동차 소식을 어떤 나라 사람들이 보든, 댓글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내용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처음 보는 차에 대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이야기가 ‘무슨 무슨 차와 닮았다’는 것이지요.

그 대상이 어떤 나라의 자동차든 그렇습니다. 그 차를 처음 보는 사람은 각자 이미 알고 있는 다른 차와의 닮은 점을 언급합니다. 감각에 근거한 이야기이자, 근거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누구나 지나가며 돌 던지듯 ‘뭐랑 닮았다!’라며 한 마디씩 합니다. 만인이 참가하는 일종의 스포츠(?)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몇 몇이 비슷한 차종을 언급하면, 그 디자인은 이미 베낀 것으로 기정사실화 되어버리지요.

물론 자동차 디자인의 복잡하고 난해한 깊은 사정을 일반 소비자가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습니다. 참고와 표절의 차이는 전문가도 명쾌하게 나눌 수 없는 영역인데다가 누구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죠. 그렇게 신차평가에 ‘닮았다!’ 한 마디씩 던지는 일은 전 국민적인, 아니 전 세계적인 스포츠로 확대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또 누군가는 작금의 사태 속에서 자동차디자인산업 현장과 일반 소비자 사이에 크게 벌어진 간극을 줄이고자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이번 글을 적게 된 이유입니다.

우선 뜬금없이 우리의 뇌 이야기를 꺼냅니다.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처음 보는 신인 배우나 가수가 등장하면 한동안 누구와 닮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눈은 누구, 코는 누구, 혹은 어렴풋한 분위기가 누구와 닮았다는 식이죠. 가수의 경우 목소리나 가창법이 누구와 닮았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신인과의 비교기준이 되는 사람은 이미 정점을 찍은 수퍼스타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즉, 신인 연예인이 등장하면, 기존의 유명한 연예인과 비교당하는 기간을 거치는 것이죠.

이런 이야기는 신인배우가 어느 정도 유명해져서 우리에게 익숙해지고 나서야 사라집니다. 신인이 대중들에게 유명해지면, 이제는 익숙해져 신인딱지를 뗀 수퍼스타가 또 다른 신인배우 등장 시의 비교기준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의 뇌가 그렇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처음 접한 낯선 대상에서 나에게 익숙한 내용을 기어코 찾아내어 안정감을 갖고자 하는 본능적인 행위입니다. 외모뿐 아니라 무엇이든 간에 연결고리 즉, 익숙함을 찾고자 하죠. 인간은 처음 보는 모르는 대상에 대해 강한 영향 (그것이 호기심이든, 스트레스든)을 받기 때문에 침착한 정상상태로 되돌리기 위한 일종의 보호장치입니다. 그 회로가 꽤 강하게 작동해서, 때로는 비교대상은 생각나지 않고 ‘이거랑 비슷한 거 어디서 봤는데’하는 느낌만 떠오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잘 떠오르지 않았던 비교대상을 끝내 생각해 내면 비로소 숨을 내쉬고 안심하지요.

새로운 자동차를 보고 ‘어떤 차와 닮았다’ 라고 평가했던 자신의 심리상태를 잘 떠올려보면, 아마도 그 이후에 어떤 안도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괜찮아. 내가 알고 있는 범위 안이야’ ‘뭐랑 비슷한 거 보니 익숙한 대상이야’ 라고요. 자신이 무언가(와 닮은 부위)를 파악할 수 있었다는 그 자체 만으로도 안정감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도무지 닮은 점을 찾아내기 힘든 디자인도 나오기 마련입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 우리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괴상하다’ 거나 ‘너무 나갔다’ 라고 말이죠. 그리고 많이 봐서 익숙해지기까지 매우 불편해 합니다. 뇌의 본능을 충족해줄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물론, 괴상하지도 너무 나가지도 않았는데 다른 차와 닮았다는 비판을 받지 않는 경우 또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이런 평가를 받는 디자인은 자동차 업계 최상위 브랜드인 경우가 많습니다.

‘고급세단은 벤츠지!’ ‘해치백은 골프지!’ ‘SUV는 랜드로버지!’와 같은 이야기를 듣는 독보적인 브랜드(와 상품)들 말이죠.

알고 보면 이들 또한 디자인적으로 다른 차와 비슷한 요소는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습니다. 여러 브랜드의 요소들을 벤치마킹하고 개선해서 우리 것에 적용하는 통상적인 디자인 활동은 어떤 브랜드든 당연하게 똑같이 행합니다. 단지, 최상위 포식자 이미지가 ‘닮았네 스포츠’에서 돌 던지는 사람을 조금 줄여준 것뿐이지요. 최상위 포식자가 다른 브랜드 디자인을 참고하는 것은 일반적인 소비자가 잘 상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연예인으로 치면 늘 비교기준이 되는 수퍼스타들이니까요. 다만 연예인은 수퍼스타 교체시기가 짧은데 반해, 자동차 브랜드의 수퍼스타는 어지간해선 바뀌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죠.

즉, 최상위 포식자 이미지를 갖춘 몇몇 금수저 수퍼스타 브랜드를 제외하면

1. 너무 나가서(=어떤 차와도 닮지 않아) 불편함을 주어서도 안되고

2. 다른 차와 너무 닮아서도 안 되는 겁니다.

한마디로 나보다 빨라서도 안되고 느려서도 안 되는 상황. 완전히 똑같이 속도를 맞춰주는 것도 어려운데, 문제는 속도 맞춰줘야 할 사람이 전세계에 수억 명 있습니다. 불가능하죠.

그래서 약간 빠르거나 약간 느린 정도 즉,

‘너무 낯설지 않되 적당히 새롭고, 어딘가 다른 차와 조금 닮았지만 그래서 불편함도 덜한’

이 정도의 정말 어렵고 좁은 영역을 노리는 것입니다. 한 해 수십~수백 개의 신차종이 출시되는 가운데 복잡하고 까다로운 법규를 모두 지켜서 디자인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출시된 차에 또 다시 ‘무슨 무슨 차와 닮았다’는 코멘트가 당연히 달립니다.

디자인이란 그런 것 같습니다. 일반 소비자 또한 그런 것이고요.

다만 서로의 이런 배경을 이해하면, 자동차 디자인 산업과 일반 소비자인식 차이의 현재와 같은 갭이 조금씩이나마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처음 보는 대상에서 내가 아는 익숙함을 찾아내고 싶은 지구인의 본능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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