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람보르기니 우라칸 퍼포만테 “바람의 아들”
  • 김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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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06 20:10
[시승기] 람보르기니 우라칸 퍼포만테 “바람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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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어? 아직. 이제 왔나? 아직도 안온 것 같은데. 마치 오랜 친구를 애타게 기다리듯, 태풍 ‘솔릭’의 위치를 시시각각 살폈다. 그런데 수도권을 관통한다던 솔릭은 급격하게 강원도로 방향을 바꿨다. 막상 서울에서는 태풍이 아니라 허풍이란 얘기까지 돌았지만, 인제스피디움에는 거센 비바람이 불었다. 마치 허리케인이란 뜻을 지니고 있는 우라칸이 비구름을 잔뜩 몰고 온 것 같았다.

밤새 내린 비로 서킷 일부엔 물이 고였고, 개의치 않고 비는 계속 내렸다. 이탈리아에서 물 건너온 람보르기니 인스트럭터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 얘기를 나눴다. 긴박한 무전이 오가고, 한국인 인스트럭터들이 비를 맞고 패독에 서 있던 아벤타도르 S와 우라칸 퍼포만테에 올라탔다. 거대한 자연흡기 엔진의 울부짖음이 빗소리를 뚫고, 인제스피디움을 채웠다.

잠시후 엄청난 파열음을 내며, 람보르기니가 돌아왔다. 서킷을 돌고 온 우라칸 퍼포만테의 보닛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났다. 우라칸 퍼포만테는 람보르기니의 다른 스페셜 모델처럼 엔진 매니폴드 커버가 청동으로 마감됐다. 람보르기니가 가지고 있는 모든 특별한 것을 전부 넣었다.

5.2리터 V10 자연흡기 엔진은 아우디 R8와 함께 쓴다. 엔진 블록은 같지만, 세부적인 부품은 조금 다르다. 또 우라칸 퍼포만테에는 우라칸 원메이크 레이스에서 사용되는 ‘우라칸 슈퍼 트로페오’의 기술이 반영됐다. 그래서 티타늄 엔진 밸브를 쓰고, 전용 흡배기 시스템이 적용됐다. 특히 배기 시스템이 크게 변경되면서, 머플러의 위치도 달라졌고, 덕분에 소리도 훨씬 커졌다.

최고출력은 610마력에서 640마력으로 높아졌고, 최대토크는 55.1kg.m에서 61.2kg.m로 강력해졌다. 람보르기니가 자랑하는 신소재 ‘포지드 컴포지트’가 곳곳에 사용되면서 무게는 40kg가량 줄었다. 공차중량은 1382kg. 현대차 아반떼보다 조금 무겁다. 몸집은 초등학생인데, 힘은 마동석인 셈이다.

겉모습도 더 우락부락해졌다. 예전에 비해 훨씬 섬뜩하게 느껴졌던 건, 앞범퍼에 돋아난 송곳니 때문이었다. 람보르기니는 백상어, 코브라 등과 같은 포식자의 강렬함을 담기 위해 앞범퍼를 새로 디자인했다. 새 디자인은 우라칸 퍼포만테 뿐만 아니라, 아벤타도르 S에도 적용됐다. 확실히 람보르기니는 아름다움보단 사나움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

사나움 속에는 우라칸 퍼포만테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ALA(Aerodinamica Lamborghini Attiva)’이 숨어있다. 프론트 스포일러에는 속에는 전기모터로 작동하는 플랩이 장착됐다. 쓰로틀, 브레이크, 차량 속도 등에 따라 자동으로 열리고 닫힌다. 공기 흐름을 인위적으로 바꾼다. 포지드 컴포지트로 제작된 거대한 리어 스포일러도 마찬가지다. 공기는 리어 스포일러 내부로 빨려 들어가고, 이를 통해 다운포스를 얻거나 공기저항을 줄일 수 있다. 좌우 플랩은 개별적으로 동작해서, 코너를 돌때 바깥쪽 뒷바퀴만 더 세차게 바닥으로 누를 수 있다.

비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벤타도르 S를 먼저 탈 때만 해도, 와이퍼를 천천히 작동시켜도 됐었는데 또 다시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서킷 곳곳에는 물줄기가 생겼고, 웅덩이가 생긴 곳도 많았다. 크고, 육중한 아벤타도르 S로 달리기엔 최악의 상황이었다. 740마력의 아벤타도르 S는 빗길에서 상당히 예민했다. 오른발에 조금만 힘을 줘도 꿈틀거렸다. 태풍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아벤타도르 S보다 우라칸 퍼포만테를 더 기대했던 건, 우라칸 퍼포만테가 가진 성격 때문이었다. 퍼포만테는 모든 부분의 성능을 극대화시킨 람보르기니에 붙는 이름이고, 우라칸 퍼포만테는 도무지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포르쉐 918 스파이더의 뉘르부르크링 랩타임을 넘어선 차다. 그래서 인제스피디움을 어떤 차보다 더 잘 달릴거란 기대감이 높았다.

약속된 행사 마감 시간이 거의 가까워졌을 때 비로소 우라칸 퍼포만테에 오를 수 있었다. 여전히 비는 내렸고, 서킷의 물웅덩이는 더 커졌다. 그래도 달려야 했고, 우라칸 퍼포만테는 달릴 수 있다고 람보르기니 인스트럭터들은 말했다. 제대로 심호흡도 못하고 서둘러 우라칸 파포만테에 올랐다. 인스트럭터는 다른 건 알려주지 않았고, 스티어링휠 앞면에 붙은 와이퍼 조작 버튼과 ESP를 절대 끄지 말란 얘기만 했다. 자신있다면 코르사 모드도 괜찮다고 했다.

아벤타도르 S를 먼저 탄 탓인지 우라칸 퍼포만테는 한결 경쾌했다. 피트를 빠져나가는 짧은 순간에서도 가벼운 움직임이 느껴졌다. 또 우라칸 퍼포만테의 소리가 훨씬 과격하고, 원초적이었다. 밖에서 듣는 소리는 아벤타도르 S가 더 압도적이었는데, 실내에서는 우라칸 퍼포만테의 소리가 더 격하게 들렸다. 레이스카와 정말 흡사했다. 남성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소리가 헬멧을 뚫고 고막을 울렸다.

조금 더 욕심을 냈다. 우라칸 퍼포만테를 서킷에서 타볼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부담은 컸지만, 코르사 모드로 주행모드를 바꿨다. 인스트럭터도 서서히 페이스를 높인다고 했다. 우라칸 퍼포만테에는 피렐리 피제로 코르사 타이어가 장착됐다. 빗길에는 취약하다. 그럼에도 우라칸 퍼포만테는 미끄러짐이 크지 않았다. 물론 절반의 힘도 쓰지 못했지만, 놀라운 속도로 코너를 돌았다. 온몸의 피가 한쪽으로 쏠리는 상황에서도 평온했다. 몇번의 코너에서 자신감을 얻었고, 인스트럭터의 새하얀 물보라를 뚫고 달렸다.

ALA를 통해 우라칸 쿠페에 비해 다운포스는 최대 750%나 증가했으니, 솔릭이 몰고 온 세찬 바람은 우라칸 퍼포만테에게 오히려 도움이 된 셈이다. 마치 ‘사이버포뮬러’에서나 볼 법한 기술에 의구심도 들었지만, 빗물이 고인 서킷에서도 속도를 점점 더 높일 수 있었던 것은 ALA를 통해 더 큰 트랙션을 확보했기 때문일 거다.

이제 몇 남지 않은 자연흡기 엔진은 우라칸 퍼포만테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단번에 엔진회전수가 치솟고, 이에 따른 가속과 폭발력은 더없이 조화로웠다. 몸과 엔진이 맞닿은 것처럼 그 반응의 변화가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여러모로 우라칸 퍼포만테의 교감 능력은 탁월했다.

람보르기니가 가진 속도에 대한 집념이 우라칸 퍼포만테를 만들었다. 람보르기니는 모든 면에서 압도적이어야 한다는 신념도 함께 담겼다. 그래서 우라칸 퍼포만테는 순수했다. 이 차에 오르면 다른 생각은 필요없다. 그저 앞만 보고 빠르게 달릴 마음만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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