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김상영] 기아차의 시한부 신차
  • 김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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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4.12 08:13
[주간김상영] 기아차의 시한부 신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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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와 기아차의 ‘공유’는 연구비를 절약한다는 관점에서 기업에게 큰 이득이겠지만, 갈수록 두 브랜드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기아차가 걱정입니다. 그동안 기아차가 가지고 있었던 감성적인 특징은 전부 사라지고 있고, 신차의 생명력도 길게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죠.

 

예전만 해도 기아차의 섀시가 현대차보다 더 단단하고, 핸들링이 유럽 스타일에 가깝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젠 그러한 차별성도 사라졌죠. 또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하며 차별화된 디자인을 내세울 때가 있었는데, 이젠 피터 슈라이어 사장이 현대차와 기아차를 모두 총괄하고 있습니다. 결국 현재의 기아차는 현대차와 ‘다름’만 있을 뿐, ‘나음’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한지붕 아래 브랜드가 기술을 공유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폭스바겐그룹만 해도 거의 모든 것을 함께 씁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와는 엄연히 다른게 있죠. 폭스바겐그룹에는 명확한 서열이 있고, 같은 세그먼트라도 서로서로 경쟁하지 않습니다.

▲ 신형 K9에는 이처럼 다양한 신기술이 적용됐지만, 올해와 내년에 출시될 EQ900와 G80에는 더 발전된 기술까지 추가로 탑재됩니다.

스코다, 세아트, 폭스바겐 등은 MQB 플랫폼, 3기통 및 4기통 엔진, 6단 및 7단 DSG 등을 기반으로 수많은 소형차를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브랜드를 대표하는 각기 다른 디자이너가 있고, 인테리어 소재도 차이를 둬서 각기 다른 체급을 형성합니다. 물론 섀시 개발도 각자 합니다. 그래서 소스는 같지만, 맛은 다릅니다.

가장 큰 차별점은 가격이겠죠. 독일에서 폭스바겐 골프는 1만8075유로부터 판매가 시작됩니다. 같은 C세그먼트인 세아트 레온은 1만5490유로, 스코다 라피드 세단은 1만5890유로부터 판매됩니다. 약 320만원의 가격차이를 두고 판매가 시작됩니다. 그레이드가 높아질수록 격차는 더 벌어지죠. 그래서 같은 세그먼트지만, 같은 등급이라고 보기 힘든 가격 차이가 발생합니다. 결국 서로 크게 싸우지 않고, 오히려 경쟁 브랜드를 더 폭넓게 견제하죠.

 

그런데 현대차와 기아차는 디자인만 다를 뿐, 많은 것이 동일선상에 위치합니다. 아반떼와 K3, 쏘나타와 K5, 싼타페와 쏘렌토 등 거의 대부분의 현대·기아차는 소비자 타겟도 동일하고, 가격도 대동소이합니다. 결국 집안 싸움이 벌어지는데, 요즘엔 모든 상황이 현대차에게 더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십년전만해도 현대차와 기아차의 신차 출시 일정이 그리 촘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각각 신차효과를 누릴 충분한 시간이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같은 해에 동일한 세그먼트의 현대차와 기아차의 신차가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8월 아반떼 페이스리프트가 나오고, 11월 EQ900 페이스리프트가 출시돼도 신형 K3와 K9의 신선함이나 플래그십의 우월함이 유지될까요.

▲ 8월에 출시되는 아반떼 페이스리프트에도 스마트스트림 파워트레인이 적용됩니다.

많은 소비자들도 이미 이런 상황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아차를 현대차의 ‘테스트베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아차의 신차가 뛰어난 상품성을 지니게 되면, 오히려 곧바로 나올 현대차의 신차를 더 기대하는 기현상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K3, K7, K9 그리고 쏘렌토까지 전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죠. 분명 기아차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좋은 선례도 있습니다. 쏘울과 니로, 그리고 스팅어입니다. 공교롭게도 기아차를 대표하는 K시리즈는 전부 아니네요. 쏘울은 아반떼, K3와 같은 베이스지만, CUV로 개발되면서 직접적인 경쟁을 피했고, 기아차만의 디자인 역량을 충분히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차가 됐죠. 니로는 아이오닉과 다르게, SUV로 설계되면서 소비자들에게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같은 재료로 만든 기아차 중에서 유일하게 현대차를 앞서고 있는 모델이죠. 스팅어도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소비자들에게 다양성을 선사했습니다. 카니발도 좋은 사례겠죠.

 

‘디자인 기아’를 외치던 때가 생각납니다. 비록 그때도 현대차의 그늘 안이었지만, 브랜드의 방향성이나 열정은 더 명확하게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현대차와의 다름을 통해 나음을 얻고 싶어하던 의지가 뚜렷했죠. 근본적인 브랜드 체질 개선과 브랜드 자립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기아차는 '기아차다움'을 찾아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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