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김상영] ‘자부심’이 사라지는 기아차
  • 김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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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1.09 11:52
[주간김상영] ‘자부심’이 사라지는 기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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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NCAP은 최근 실시한 충돌테스트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여기에는 현대차 코나, 기아차 스팅어, 스토닉 등의 점수가 포함됐죠. 코나와 스팅어는 기본 모델에도 안전장비가 꽤 충실해서 별 다섯개의 안전등급을 획득했습니다. 특히 스팅어의 점수는 BMW 5시리즈보다 우수했죠.

 

문제는 스토닉이었습니다. 스토닉에는 유로 NCAP이 중요시하는 안정장비가 기본으로 탑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본 모델의 경우 별 세개를 획득하는데 그쳤습니다. 기아차 모닝, 피아트 500, 도요타 아이고 등 경차 크기를 가진 차와 같은 등급을 받은 셈이죠. 

스토닉을 SUV라고 강조하던 기아차 입장에서는 조금 부끄러울 수도 있는 일입니다. 물론 긴급제동 보조 시스템, 차선 보조 시스템 등이 탑재된 스토닉은 별 다섯개를 획득하며 겨우 체면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유로 NCAP의 리포트를 자세히 살펴보니 조금 이상했습니다. 공개된 스토닉의 점수는 사실 스토닉이 아닌, 신형 프라이드의 것이었죠. 스토닉의 충돌테스트는 아예 진행되지도 않았습니다. 유로 NCAP은 스토닉과 프라이드는 차체가 동일하고, 안전 장비나 실내 트림도 똑같기 때문에 프라이드의 데이터를 그대로 반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마디로, 유로 NCAP은 두 차를 ‘같은 차’라고 보고 있는 것이죠.

 

아마 기아차는 스토닉이 받은 충돌테스트 점수보다, ‘프라이드와 스토닉은 같다’는 유로 NCAP의 설명을 더 꺼려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말이죠. 굳이 감출 이유도 없는데 프라이드와 스토닉이 한데 묶이는 것을 기아차는 극도로 경계했으니까요.

기아차는 스토닉의 장점을 어필하기 보단, 마치 ‘새차’처럼 보이게 하는 마케팅에만 열을 올렸습니다. 프라이드의 흔적을 감추려고 더 억지스럽게 ‘SUV’만을 강조했습니다. SUV가 더 크고, 안전하단 소비자들의 인식이 있기 때문이고, 소형 SUV에 유행에 쉽게 편승하기 위한 의도였죠. 그리고 파생모델이 아닌 신차의 느낌으로 가격을 단번에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 스토닉과 프라이드를 연결짓는 순간, 스토닉을 설명하던 '가성비', 'YES SUV'는 전부 무너지게 된다.

기아차는 스토닉을 ‘가성비 좋은 SUV’라고 적극 홍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토닉은 프라이드와 같은 생산 라인에서 만들어지고, 프라이드보다 그리 크지도 않으며, 프라이드보다 그리 안전하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격은 기존 프라이드에 비해 300만원 이상 올랐죠. 결국 기아차는 ‘가성비’의 정당성을 위해 국내 시장에서 프라이드를 더이상 판매하지 않을 계획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작은 해치백은 살아남기 힘들고, 작은 SUV가 유행이니 작은 SUV에 집중하자는 것은 이윤추구를 최우선하는 회사의 당연한 결정이겠지만, 기아차에게 프라이드의 의미가 고작 이 정도였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또 현대차는 헤리티지를 강조하는 여러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기아차는 기아차를 넘어, 한국 소형차 역사의 한 획을 그은 프라이드를 없앨 생각만 하고 있다는 게 조금은 씁쓸하고요.

 

최근 기아차는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제네시스처럼 별도의 고급 브랜드를 계획하고 있다는 얘기도 끊이지 않고, 소형차 라인업을 새롭게 정비하고 있는 상황이죠. 프라이드는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사라지지만, 기아차의 ‘프라이드’는 사라지지 않길 바라봅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금, 기아차를 일으켰던 프라이드를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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