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458 스파이더 시승기…상상 그 너머의 슈퍼카
  • 김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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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1.10 19:23
페라리 458 스파이더 시승기…상상 그 너머의 슈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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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운전자는 어느 순간부턴가 함께 미쳐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해도? 이래도!” 운전자는 난폭하게 채찍을 가했다. 빨간 야생마는 겨울 차가운 도로위에서 연신 뒷바퀴를 미끄러뜨리며 드리프트를 보여줬다.

이렇게 거칠게 다루는데도 페라리는 운전자의 의도에서 단 한뼘 오차도 없이 정확히 미끄러지고 다시 정교하게 그립을 되찾아오는 것을 거듭했다. 때로는 총알처럼 빠르게 가속하고, 때로는 벽에 부딪친 듯 즉각적으로 멈춰서는 것을 반복 할 수록 점차 할말을 잃었고 나중엔 그저 비명인지 감탄사인지 모를 외마디 소리를 계속 외쳐댔다. 한참이 지나서야 흥분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이건 감히 자동차라고 부를 수 없는 괴물이야”

 

◆ START YOUR ENGINE!

외관도 멋지지만 실내까지 조형적으로  아름답다. 차안의 모든 계기와 스위치는 운전자를 향해 있고 모든 것이 주인님 뜻이라는 듯 내 손길이 즉시 닿을 수 있는 위치에 대기하고 있다. 엄청나게 낮은 458의 시트는 그저 앉기만 해도 언제나 심장이 두근거렸다. 

핸들에는 꽤 많은 버튼들과 스위치가 있다. 드라이빙모드, 서스펜션 강도, 패들시프트 같은 것도 달려있지만 깜박이, 클락션, 패싱라이트(하이빔), 와이퍼 조작 같은 평범한 스위치까지 모두 올라와 있다. 핸들에서 손을 떼지 않고도 엄지 손가락만으로 운전에 관한 모든 조작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버튼이 이 슈퍼카를 운전하는데 필요한 것들일 뿐, 오디오 따위를 조작하는 엔터테인먼트 기능은 감히 숭고한 페라리 핸들에 올라앉지 못한 듯 하다. 

 

핸들에는 빨강 노랑 파랑 같은 원색이 알록달록 배치돼 있는데, 마치 F1레이스카 핸들의 배색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넷티노'라 불리는 핸들의 '드라이브 모드' 스위치는 총 5가지인데, WET, SPORT, RACE, 트랙션컨트롤 OFF, 스태빌리티컨트롤 OFF 등이다. 다른 차에서 볼 수 있는 COMFORT나 NORMAL 모드 같은건 아예 없다. 모드를 바꿀때 마다 계기반 LCD화면을 통해 E-Diff, F1-Trac, ABS 등 전자제어 기능들이 개입하는 정도가 변화 되는걸 볼 수 있다. 마치 그란투리스모에서 차량 세팅을 하는 느낌이다. 말 그대로 전자제어식 디퍼런셜과  F1에서 나온 기술력을 집약한 트랙션 컨트롤 기능이다. 

여느 페라리와 마찬가지로 패들시프트 양쪽을 당겨 중립을 확인하고 시동을 걸었다. 시동버튼을 누르는 순간 우르릉대는 설렘도 잠시. 공회전 소리가 이내 조용해져 어색하다. 흔히 페라리라면 거친 소리를 기대하게 되는데, 실제 타보면 포르쉐911 터보나 메르세데스-벤츠 AMG류의 독일제 스포츠카들에 비해 훨씬 조용해 이질감이 느껴진다. 그저 시동이 걸려있는걸 알 수 있는 정도의 사운드다. 요즘 독일 자동차들은 전자장비와 스피커 등을 이용해 배기 사운드도 만들어내고 있는데, 역시 진정한 고수는 쓸데없는데 과시하지 않는 법인가보다. 

 

◆ 도심을 여유롭게 달리는 데일리카

핸들 오른쪽 패들을 당겨 1단을 넣고 차를 출발 시킨다. 자동 변속이긴 하지만 기어노브 같은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승차감이 우수하고 실내가 쾌적한 점은 감격스럽다. 외관을 보고 상상하는 것과 달리 458은 주행하기도 매우 쉽다. 물론 엔진은 초고회전, 초고출력을 내도록 만들어져 있지만 낮은 RPM에서도 충분한 토크를 갖고 부드럽게 힘이 증가되는 방향으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낮은 배기음이 엔진 회전수를 높일수록 조금씩 고음으로 변화되는 점이 오히려 흥분을 고조시킨다.

458 스파이더가 458 이탈리아 쿠페 모델에 비해 좀 더 부드럽게 세팅 돼 있다는 점도 오히려 마음에 든다. 페라리는 오픈을 선호하는 페라리 구매자들이 레이스보다는 좀 더 부드러운 감성을 선호하고 있어서 이같이 세팅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전 페라리 기어박스에 비해 이번 듀얼클러치기어박스는 훨씬 안락하고 부드럽다. 번개 같은 변속 속도에 일반 자동변속기 수준의 편안함까지 갖춰졌다. 다만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을때 천천히 전진하는 크리핑은 일어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나 저속에서도 즐기며 달릴 수 있게 만들어진게 이 차의 특징이지만 페라리 엔진은 역시 고회전에서 진가를 드러낸다. 4000rpm을 넘으면서는 엔진이 숨통이 트인듯 쾌활한 배기사운드를 터뜨리면서 곧장 9000~10000RPM까지 치솟아 버린다.

날씨가 춥고, 여름용 타이어가 끼워진 관계로 핸들의 드라이빙 모드를 WET로 옮기고 주행했다. 이 정도 부드러움이면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데도 별 지장이 없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커다란 엔진이 뒤에 있어 트렁크는 앞쪽 뿐이지만 중형 여행용 캐리어 정도는 쉽게 넣을 수 있었다.

▲ 458 이탈리아에는 없지만 458 스파이더에는 시트 뒤쪽에 홈이 마련돼 있어 경우에 따라 골프백까지 실을 수 있도록 했다.

2인승 자동차 중에선 실내 공간도 매우 넉넉한 편에 속한다. 시트 뒤로 짐을 놓는 공간이 별도로 마련 돼  어지간한 가방을 쉽게 수납할 수 있다. 심지어 풀사이즈 골프백까지 수납 할 수 있다고 한다. 메르세데스-벤츠 SLS AMG 같은 스포츠카를 탈 때 좌석 뒤 공간이 거의 없어 가방은 커녕 핸드백도 놓기 힘들었던 것에 비하면 이 정도 공간은 축복에 가깝다.

다른 슈퍼카의 천장은 대부분 손으로 떼내야 하지만 이 차는 버튼만 누르면 열린다. 천장을 180도 뒤집어 엔진 바로 위 틈바구니에 넣어버리는 아주 현명한 방식이다. 작동시간도 단 14초로 놀랄만큼 빠르다. 전동 하드톱인데도 불구하고 관련 부품은 소프트톱보다 25kg가량 가볍고, 일반 458과 비교해도 불과 50kg 무거울 뿐이다. 다만 쿠페 모델에서 유리를 통해 언제든 볼 수 있던 엔진을 스파이더에서 볼 수 없게 된 점은 아쉽다. 

 

◆ 9000rpm의 충격과 경악

가속페달을 절반정도 밟았을 뿐인데 등이 시트에 꾹 눌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차는 가속하고 또 가속했다. 급가속하는 동안은 시트에서 몸을 뗄 수 조차 없었다. 3.4초만에 시속 100km를 달리고 10초만에 시속 200km를 달려버리는 차를 탄다는 것은 그런 느낌이었다. 최고속도는 시속 320km에 달한다. 물론 이를 경험할 일은 거의 없겠지만 아무리 빠른 속도에서도 충분히 더 달릴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여겨진다. 

이 차의 엔진은 무려 9000rpm에서 레드존이 시작돼 1만rpm까지 표시된다. 도로용 자동차로는 믿기 힘든 숫자인 동시에 독일 스포츠카 메이커들이 넘보지 않는 못하는 영역이다. 1만5000rpm으로 회전한다는 F1 머신이 그리 부럽지 않은 정도다. 그 결과 4.5리터급 엔진으로 무려 570마력을 쏟아낸다. 

F1 레이스카 같은 면은 또 있다. 전면 그릴에 보이는 작은 날개는 속도에 따라 방향이 바뀌면서 다운포스를 높이고 그릴로 들어가는 공기저항을 낮춰주는 역할까지 한다.

이전 미드십 페라리의 측면에 있던 공기 흡입구도 458에선 차체 바닥으로 옮겨졌다. 공기를 아래에서 빨아들이니 차체 아래쪽 기압이 낮아져 다운포스(차체를 아래로 누르는 힘)가 극대화 된다. 그라운드이펙트(차체 아래의 기압을 낮춰 다운포스를 높임)를 이용해 성공을 거둔 로터스 F1머신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로 인해 다운포스도 높아졌지만, 측면 라인도 매끈하게 빠졌다. 감동적일만큼 멋지지만 이전 페라리의 추억이 사라지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쉽다. 

458은 4.5리터급 8기통 엔진을 가졌다는 뜻에서 온 이름인데, 페라리 캘리포니아와 동일한 엔진은 아니지만 꽤 유사하다. 캘리포니아에서 처음 사용된 직분사엔진과 8기통 보어를 유지한채, F430의 스트로크를 조합해 이 엔진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연흡기로 리터당 127마력이라는 숫자라니, 얼마전만해도 레이싱카 엔진에서나 볼 수 있었을 법한 출력이 이 차에 담겨있다.

 

여기 장착된 변속기 또한 캘리포니아에서 처음 사용된 듀얼클러치 7단 변속기다. 이 듀얼클러치의 성능이 워낙 우수하기 때문에 458에 이르러 수동변속기 모델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변속이 굉장한 속도로 이뤄질 뿐 아니라, 토크의 손실도 적어 차가 밀고 나가는 힘이 공포스러운 정도다. 특히  540Nm의 어마어마한 힘이 샤프트도 거치지 않고 뒷차축에 그대로 연결되기 때문에 가속페달의 조작에 따라 일순간 지체도 없이 차를 밀어 붙이는데는 경악할 정도다.

◆ 스트레스는 사라지고 오로지 쾌감만 남았다

이전 페라리는 코너에 들어설 때마다 운전자의 머리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곤 했다. 코너에서 가속페달을 조금이라도 더 밟을 때는 물론, 급작스럽게 발을 떼기만 해도 이내 뒷바퀴가 얼음판에 놓인 것처럼 미끄러졌다. 짜릿한 쾌감은 대단했지만 긴장감 또한 극도로 높았다. 차를 즐기는게 아니라 마치 운전기사가 된 느낌으로 자동차님을 모시는 느낌이었다.

반면 458은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신뢰감, 어떤 경우에도 운전자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더구나 스티어링휠은 매우 민첩하고 극도로 정확해 생각을 미리 읽는 것 같은 착각마저 일으킬 정도다. 전 차종에 기본으로 제공되는 카본세라믹브레이크도 매력적이다. 밟을때는 조금 힘줘서 밟아야 하지만 멈춰서는 느낌은 아스팔트에 메다 꽂히는 것 같은 충격이다. 

 

핸들과 브레이크에서 확고한 신뢰가 뒷받침되니 더욱 강하게 차를 밀어붙일 수 있었다.

상상한 것보다 훨씬 정교하게 움직여지니 점점 욕심이 늘었다. 어지간한 코너는 조금씩 드리프트나 슬라이드를 시도하면서 돌 수 있었다. 뒷바퀴는 조금씩 미끄러졌다가 다시 되돌아온다. 차는 무슨 일이나 있었냐는 듯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그대로 전진한다. 

초고속 영역에서도 능청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초고속으로 달릴때도 안정감이 있다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더욱 안정감이 높아졌다. 속도를 높일 수록 차는 바닥에 착 달라붙었고, '불안감'이나 '흐트러짐' 같은건 어쩐지 다른 세상의 이야기로 느껴졌다. 

 

◆ 최고의 것을 경험한다는 의미

적어도 인간이라면 어떤 종류든 극한을 맛보고 싶어하지 않을까. 그럭저럭 괜찮은게 아니라 최고봉에 무엇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 말이다. 페라리는 자동차 분야에 있어 그 영역의 너머에 있는 차다. 단지 빠른 차가 아니라 현생 인류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스포츠카. 그게 바로 페라리의 정의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핫'한 자동차를 찾아본다면 단연 페라리 458이 된다. 페라리 중 그나마 현실적인 가격이고 가장 빠릿한 운동성능을 가졌기에 스포츠카의 정의에 걸맞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자동차 경주가 펼쳐지고 있지만 상당수가 페라리 458을 선택하는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세상에는 그저 잘팔리기 위한 차, 기업의 이미지를 끌어준다는 생각에 마지못해 내놓는 스포츠카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페라리 458에는 모든 역량을 다해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달리는 최고의 차를 만들겠다는 순수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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