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김상영] 낮은 곳에서부터
  • 김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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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0.19 09:46
[주간김상영] 낮은 곳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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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옛말이 있지만, 때론 윗물이 맑지 않아도 아랫물은 맑을 수 있습니다. 변화는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될 때가 있죠.

지난 12일, 경기도 화성 현대차 남양연구소에서는 아주 유쾌한 행사가 진행됐습니다. 언제나 정숙하고, 삼엄하게 느껴졌던 연구소에서 박수 갈채가 쏟아지고, 웃음이 넘쳐 흘렀습니다. 올해로 벌써 8회를 맞이한 ‘R&D 페스티벌’ 때문이었죠. 연구개발을 뜻하는 ‘R&D’란 단어 때문에 무겁고, 진자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진짜 ‘페스티벌’처럼 발랄하고 흥미로웠습니다.

 

 

R&D 페스티벌은 주로 1-3년차의 젊은 연구원들이 주축되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놓는 자리입니다. 아이디어가 양산 가능성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이디어가 얼마나 독창적이고, 참신한 것인지가 심사의 중요한 부분이었죠. 연구원들의 ‘브레인스토밍’이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기발한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일단 구동이 될 수 있냐도 관건이었죠. 이들은 공상가가 아니라 연구원이니깐요.

▲ 전기차 시대에, 라디에이터 그릴이 기능성을 상실하게 됐을 때, 그 안에 로봇청소기를 넣어 자동으로 세차를 하게 한다는 '더스트 버스터'. 청소기는 진공 고정력과 회전력을 통해 외부 패널에 붙어 자유롭게 청소한다. 

7개월 동안의 대장정은 지난주 마무리됐습니다. 정말 허무맹랑한 작품도 있었고, 기발한 아이디어도 많았습니다. 또 참신하면서도 충분히 현실가능한 것도 있었습니다. 대상을 차지한 ‘심(心), 포니’는 컴페티션에 매우 적합한 제작 동기와 주제를 갖고 있었고, 양산 가능성, 브랜드 이미지 제고, 완성도 등 모든 면에서 압도적이었습니다. 등장과 동시에 단번에 우승이 예상됐죠.

이름부터 남달랐던 ‘심포니’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차량 주행지원 시스템을 선보였습니다. 친척 중에 청각장애인이 있어서 기획하게 됐다고 합니다. 청각장애인들은 몸을 움직이는데는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직접 운전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청각장애인 운전자는 매년 3배씩 증가하고 있죠.

▲ 심포니의 수어 번역 시스템 시연.

하지만 주변 상황의 소리, 주로 경적 소리를 인지하지 못해 위험에 빠지는 경우도 있고, 사고가 났을 때도 상대방과 의사소통이 힘들어 곤란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심포니팀은 외부소리를 실내 조명의 다양한 색상과 진동으로 운전자에게 알리는 시스템과 내비게이션과 연동된 수어 번역 시스템을 차량에 탑재했습니다. 간단한 모션인식 센서와 손목에 착용하는 모션인식 밴드를 통해 수어를 음성 및 텍스트로 변환해주고, 음성을 다시 수어 영상 및 텍스트로 바꿔주는 프로그램입니다.

▲ 예를 들어, 구급차의 사이렌이 울리면 초록색, 경찰차는 파란색, 소방차는 빨간색 등으로 표시된다. 대역 주파수를 분석해 다양한 소리를 분석해 청각장애인 운전자에게 불빛으로 알려주고, 손목에 착용하는 세이프티 밴드를 통해 진동 경고도 전달한다.

BMW를 시작으로 ‘모션 인식’이 양산차에 적용되는 시점에서, 심포니팀의 ‘포니톡’은 매우 시의적절해보입니다. 차량을 조작하던 기술에만 머물렀던 모션 인식을 사람 중심의 시스템으로 바꿔놓은 것이죠. 완벽하게 새로운 것은 없었습니다만, 관점의 차이가 낳은 결과는 컸습니다.

현대차그룹 R&D를 이끌고 있는 양웅철 R&D 총괄 부회장과 권문식 R&D 본부장 부회장은 페스티벌 내내 흐뭇하게 어린 연구원들을 바라봤고, 성격 좋은 알버트 비어만 부사장은 연구원들이 내놓은 작품을 유심히 살폈습니다.

▲ 50여개의 셀은 자유롭게 높낮이를 조절하면서 실내 공간의 모습을 바꿀수 있다. 셀이 더 촘촘하고 많아진다면 차량 시트도 '플루이딕 스페이스'로 대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대차그룹이 새로운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이런 젊은 에너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기술은 우리의 예상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유행은 계절보다 빠르게 바뀝니다. 여러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젊은 연구원들과 디자이너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의 창조적인 발상과 노련한 연구진들의 경험이 결합한다면, 현대차그룹은 조금 더 나은 방향성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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